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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을 읽고

by 안규수 2013. 10. 1.

 

 

   이 소설은 1977년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이자 천재작가 김승옥의 마지막 작품이다. 「서울의 달빛 ‘0장’」이라는 소설제목이 풍기는 이미지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월남전 파병, 유신체제 발동, 경제성장, 급격한 거대 도시화 등으로 전통적인 규범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던 1970년대의 도덕적 붕괴 참상을 언어로 포착하기위해서는 나로서는 그러한 문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인공 ’나‘는 작가인 내가 아니라 1970년대의 비극적 붕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 모두인 것이다.’

   이 소설은 결혼과 이혼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가족의 사회적 의미와 1970년대 인간 삶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 그것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의 환멸이다.

   ‘인간은 자연인가? 메우고 썩힌다. 썩은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썩은 감정, 자리를 차지 못한 자들의 증오, 평화가 만든 여유, 여유가 만든 가수요, 가수요가 만든 부패, 부패가 만든 증오, 부패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남은 일은 증오의 누적, 그리하여 전쟁, 전쟁은 필연이다.’

   주인공 ‘나’는 돈 때문에 몸을 파는 한영숙이라는 여인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하여 썩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작가의 울분이 통열하게 그리고 있다. 「서울의 달빛 0장」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간헐적으로 끼어들긴 하지만 중심인물은 두 사람 뿐입니다. 주인공 화자로 등장하는 대학교 시간강사인 ‘나’와 탤런트이며 그의 아내였던 ‘한영숙’이 그들이다.

   소설은 ‘나’가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때는 이미 한영숙과 이혼한 이후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그와 한영숙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의 첫날밤이 그려지고, 처녀막을 상실한 아내를 향한 의처증으로 결국은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고, 이후 아내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며 갈등에 빠져든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많은 여자들을 상대하면서 아내였던 한영숙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삭인다.

   그는 최근 구입한 최고급 승용차 ‘레코드’를 타고 한영숙이 일하는 방송국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 승용차를 구입하고 남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아내에게 건네주려 한다. 그러나 “저어…… 나…… 영숙이 아파트로 가끔 놀러 가도 되겠어?” 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그는 한영숙을 아내로 받아 드리기보다 가끔 만나 욕구를 분출하는 상대로 여길 뿐이다. 그러나 한영숙은 그의 그런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통장을 찢으며 분노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도 자존심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인 것이다.

   첫 날밤 처녀막의 유무로 하여금 의처증이 발동한다는 점에서 ‘나’가 순결 이데올로기로 사로잡힌 구시대적 인물임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문제시하는 것은 탤런트인 한영숙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에 있다. 탤런트 한영숙을 바라보는 세인의 시선과 그 시선을 온몸으로 욕망하는 그녀에 대한 불만이다. 즉 소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들 부부의 문제의 본질은 탤런트 한영숙이라는 여성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따지면 그녀에 대한 그의 이해는 자신이 독점할 수 없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그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영숙이 아파트로 가끔 놀러가도 되겠어?”라며 독점이 아닌 과점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그녀에 대한 이해가 아닌 그녀를 향한 비열한 욕망일 뿐이다. 그들의 결혼이 이혼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로 왜곡된, 상대를 향한 소유욕으로는 온전한 부부 관계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한영숙은 ‘나’가 건네주는 통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채 유유히 사라졌다. 탤런트라는, 상품화된 성적 이미지를 지닌 그녀이지만, 돈으로 소유될 수 없다는 그녀의 자존(自存/自尊)이 멋지게 돌아서고 만 것이다. 비록 성이 상품화되었다지만 인간 자존의 의지를 허물 수는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상대의 성을 소유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는 해도, 상대의 자존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자존에 대한 존중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