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현수 목사님의 <위대한 실패> 라는 책중에서 <고통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 이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인간이 가장 진실할 때가 곧 존재의 한계점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라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나도 그 절대 좌절과 절망이라는 수렁 속에서
“주님, 나를 이 고통에서 건져주세요!”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또 “주님, 제발 나를 데려가주세요!”라고 뒹굴며 기도를 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어떠한 기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주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갈망했기에,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전심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온 힘을 다해 기도하기를 수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주님의 음성이 나의 심령을 강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주님이 무슨 기적을 베푸셔서
나를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건져주시리라 믿고 은연중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오히려 나에게 “너 그 고통의 끝자리까지 가보지 않겠니?”라고
의외의 질문을 던지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얼떨떨했지만, 나도 엉겹결에 주님께 여쭸다.
“아니 주님, 고통의 끝자리라뇨? 고통에도 끝이 있는 겁니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지 않겠니?”
나는 주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대답했다.
“주님, 만일 그것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면,
이제 더 이상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고, 한번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그 답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마치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가
과거, 현재, 미래를 거치는 환상 여행을 떠났듯이,
내가 50평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들이
모두 다 살아나서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실패, 거절, 천대, 수모, 억울함, 원통함, 배신, 버림당함, 불의, 불공평, 빈곤, 궁핍
그리고 온갖 질병까지 오만가지 고통과 번뇌가 다 들어 있었다.
더구나 그 안에는 내가 평생토록 수없이 많은 죄를 지으면서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했던 모든 죄책감, 정죄감 그리고 수치심마저 다 들어가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어느 한순간에 나는 분명 고통의 끝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고통의 끝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면서 경악하고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의 끝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주님이 나의 고통의 끝이라니!’
나는 거기서 분명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시는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고통의 끝이다!”(I am the end your pain!)
바로 그 순간 나는 예수께서 온 인류의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고통의 끝이 되셔서, 고통 가운데 못 박혀 죽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전광석화 같은 깨달음이 나의 영혼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또 수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겪었던
모든 멸시와 조롱, 수모, 거절, 배신 그리고 버림받음은 나 혼자만의 체험이 아닌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겪으시면서 실제로 체험하신 저주이기도 했다.
즉 주님은 분명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고,
자기 동족들에게 거절을 당하셨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으며,
또한 온 인류와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죽고 말았던 것이다.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는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시기 위해, 고통의 끝이 되셨다.
즉 누구든지 진정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 고통의 끝이 되신 예수께로 나아가 그에게 모든 고통을 드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나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으심으로써
고통의 끝까지 가사, 결국에는 그 모든 고통을 십자가상에 못 박아 죽이셨던 것이다.
이 진리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 나는 지난 시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억누르고 있었던
모든 고통의 멍에와 우울증의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받을 수 있었다!
오직 십자가상에서 고통의 절정을 체험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고난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모든 실패의 저주와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다.
그것이 참 ‘십자가의 도道’인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장 5,6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장 15,16절
모든 고통에서 저를 구원해주시고자 고통의 끝이 되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저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으셨으므로
이제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님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모든 고통의 멍에와 우울증의 저주로부터 저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막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미국 침례교의 정신적 지주인 저드슨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도둑맞더라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 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시간이다. ”
조지 워싱턴은 저녁 6시를 기도하는 시간으로 정해놓고 평생을 지켰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시간은 지켜졌고, 아무리 업무가 바빠도 절대로 어기질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는“당신이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만큼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라!
기도에는 군대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세 시간은 기도하려고 힘썼습니다.
일이 바빠 기도가 힘들 때에는 오히려 더 많이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신의 경건 훈련을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시간 이상씩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과 은혜가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했고 다니엘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작은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기도를 통해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게 하소서.
지난 일주일간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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