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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십자가의 참 의미

by 안규수 2016. 7. 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지요?


저는 하노이에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하노이는 비가 많이 오네요~ 오늘 내일도 비소식이 있구요!

어느 지인의 말처럼 하노이는 화려하진 않지만 깊이가 있다는 말이 새삼 깊이 와 닿는 차분한~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 한 주간의 업무 잘 마무리하시구요,

행복한 주말, 복된 주일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현수님의 <위대한 실패>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 십자가를 사랑하고 원하는 척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멸시와 거절과 배신과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들 성공해서 영광스럽게 예수님을 만나보기 원하지,

어느 누구도 처참하게 실패하고 망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에 대해 김관영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흔히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I believe the cross)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 사실 틀린 표현이고

오히려 ‘I believe into the cross’라는 표현이 문법상으로나 신학적으로 더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여기서 사용된 ‘into’라는 전치사가 헬라어로는 ‘eis’인데,

이 단어는 ‘into, toward’ 또는 ‘through’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십자가는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into,

혹은 내가 그것을 통과하여through 믿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십자가라는 상징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십자가 안에 들어가(그 십자가를 통과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그 실제를 체험해야만 한다.


즉, 십자가의 참 의미는 십자가가 상징하는

멸시, 거절, 배신 그리고 버림이라는 처절한 저주와 고통 안에 들어가

‘나’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못 박혀 죽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길이다. 


또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인생의 대실패, 절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한계점까지 도달해서 완전히 바닥을 치기 전까지는,

십자가의 길에 들어설 수도, 십자가에 못 박힐 수도 없다.

왜냐하면 멀쩡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오직 사형선고를 받아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실패하고 망한 죄인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 실패자들이다.

학업에 실패했고, 가정에 실패했고,

자녀교육에 실패했고, 사업에 실패했고,

직장에 실패했고, 대인관계에 실패했고,

도덕에 실패했고, 신앙에 실패했고,

사역에 실패했고, 인격에 실패했고,

또한 최종적으로는 인생에 실패한 낙오자들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실패한 존재적인 패배자들이다!

즉 우리는 더 망할 수 없을 만큼 완전 쫄딱 망해버린,

폐기처분을 해서 없애버려야 할 전혀 쓸모없는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망가져버린 ‘고물’ 같은 ‘나’라는 존재와

오직 자기만을 사랑해왔던 ‘괴물’ 같은 병든 자아를 십자가로 처형해서 완전히 끝장내기 원하신다.

즉 십자가는 ‘나’라는 존재가 끝장나는 장소이다.


또한 그곳에서 온 인류도 함께 끝장이 났다.

즉 골고다 십자가라는 영원한 폐기 처분 장소에서 나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지지고 볶고 울고 짜고 했던 인생의 파노라마도,

인류 역사의 모든 흥망성쇠와 부귀영화도,

온 인류가 지은 모든 죄도 다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실패는 다 십자가로 끝이 나야 한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실패는 완전 저주요, 처참한 일이다.

그런 식의 실패는 오직 분노, 분쟁, 증오, 원망, 쓴뿌리, 화병, 저주 그리고 죽음만을 낳게 된다.


하지만 만일 우리의 실패가 오직 십자가로 끝이 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실패의 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요,

실패의 경험이 축복의 통로가 되는 놀라운 역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실패를 통하여, 

부활이라는 가장 ‘위대한 성공’을 만들어내셨던 것이다!

만일 우리의 모든 실패가 오직 십자가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위대한 실패’요, 또한 동시에 가장 ‘위대한 성공’이 될 수 있다!


실패자들이여! 패배자들이여! 낙오자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자!

그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못 박혀 죽고,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자!

‘위대한 실패’를 통해 ‘위대한 성공’을 체험하도록 하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주님, 저의 모든 실패가 오직 십자가로 결론 내리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의 병든 자아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장내주시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번 예배의 자리는 참 많이 특별했어요.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청년부에서 열린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첫 시작의 예배였어요.

액츠뮤지컬선교단팀이 초청되어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라는 공연을 보게 되었어요.

특별했던건 이 공연을 실은 처음 본 공연이 아니였는데

공연에서 복음이 보여진거예요.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장면 중에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앞 못보는 자의 눈을 볼 수 있게 고치시고,

걷지 못하는 자의 손을 붙잡아주셔서 걷도록 격려하시는-

이 두 장면에서 보인 복음은

앞 못보는 자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으로 고쳐주신걸까,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된건 내 몸의 일부인 이 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걸까 하는게 마음으로 보였어요.

이건 하나님이 주신 마음 같았어요.

와 신기하다.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진다는게 이런걸까 하면서

하나님감사합니다 하며 본 공연이였어요.

저는 성경적인 지식이 많이 없기때문에 저에게 보여진 이 마음이 스스로 되게 놀라운거예요.


또 감사했던건

공연해주신 공연팀이 너무나 화려하지않아서, 덧하거나 꾸며내지않아서

그 안에서 복음만이 빛이나게 최선을 다해 소화해내시는것 같아서 감사하고 좋았어요.

노래와 그림뿐만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로운 예배의 모습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양각색으로 많은 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흩어져 살고 있지만

결국 무엇을 하던 목적과 하는 것의 본질은

나를 만나주신 복음을 나누는 것이 되게 이끌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세계 최고 수준의 공대와 미대가 있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약 십년간 행적을 추적하며 조사를 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졸업생들의 연봉과 일하는 직장, 그리고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해서

‘성공’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학생들을 추린 뒤에 그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았습니다.

사전가설에서는 성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고 생각됐지만

실제로 성적과 기술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확률적으로 약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85%가 성공한 원인은 원만한 인간관계 때문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이들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잘 챙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다른 사람을 찾아가고, 연락하고, 편지를 쓰는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약간 더 나은 실력보다는 인간적인 매력과 좋은 성품이 성공에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만한 인간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연락 한 번, 짧은 편지한 장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동역자들을 세우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더 친절하고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일주일에 최소 3명에게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