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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바쁜 신앙인은 나쁜 신앙인

by 안규수 2016. 7. 1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어제 하노이 직원 결혼식이 있어 하루 일찍 하노이로 올라와 

아침을 하노이에서 맞고 있습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이현수 목사님의 <위대한 실패> 라는 책의 <바쁜 신앙인은 나쁜 신앙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들이 

줄줄이 “나는 실패했습니다!”라고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숨기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될 것이요, 

우리 자신의 입으로 우리가 지은 모든 죄와 살아생전 행한 모든 일들을 

주님께 낱낱이 직고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나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큰 실패자입니다! 

나는 사람들과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하나님과는 너무 적은 시간을 보냈습니다”라는 진솔한 고백을 했다. 


성경에 보면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또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요 6:28,29, 새번역)


사실 주님의 최대 관심사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에 있지 않고, 

주님과의 관계에 있다. 

즉 주님을 알고, 또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뜻이다.


 현대 신앙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바쁘다는 사실에 있다. 

교회 다니느라 바쁘고, 

성경공부하느라 바쁘고, 

봉사하고 예배드리고 사역하고 훈련받느라 바쁘다. 

정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정신없이 사역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님을 알고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일에는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제대로 할애하지 않는다. 

언젠가 “바쁜 아빠는 나쁜 아빠”라는 슬로건을 본 적이 있는데, 

“바쁜 신앙인이 곧 나쁜 신앙인”인 것이다. 

사실 현대 신앙인들의 최대 공공의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아니라,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음악, 영화, 미디어, SNS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들이요, 정보매체들이다 

(물론 이 말은 그런 것들이 무조건 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신앙과 영성생활의 방해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혼자만의 공간 안에서, 

거의 24시간 내내 그런 것들에 묶여서 살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경고한 대로, 

현대인들은 전자기기에 홀려서 21세기판 우상인 스마트폰에 입을 맞추고 절을 하며 

온갖 전자공해와 그로부터 파생된 소음과 잡음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소위 ‘기독교 영성’이라는 단어는 현대 교회 안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주님과 나 단둘이 교제하는 ‘친밀한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관계 중심적’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무슨 사역을 했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나는 인생의 몇 가지 대실패를 거치면서 자동적으로 무소유자가 되었고 

사역지마저 잃어버려 무사역자가 되고 말았다.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몇 개월을 지낸 적도 있었다. 

반강제적인 안식년에 들어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침묵의 도’와 고독의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 깨달은 진리는 내가 너무나 많은 생각과 말들을 하고 있고, 

또한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과 말과 일들의 90퍼센트 이상은 

결국 다 쓸데없는 것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신앙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모든 방해 요소들로부터 해방받아,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기억하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장 5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17절

그토록 분주하면서도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 적은 시간을 보냈던 것을 회개합니다. 

모든 방해 요소들을 정리하고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기로 결단하오니, 

참 하나님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눅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폴란드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파데레프스키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인이 들어와 성냥을 팔아달라며 구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아무도 성냥을 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배인이 와서 곧 걸인을 쫓아냈습니다. 

식당에서 쫓겨난 그 걸인은 거리 한 모퉁이에서 열리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모금 행사’를 발견하고는 모금함에 자신이 팔려던 성냥 몇 개를 넣고 길을 떠났습니다. 

파데레프스키는 훗날 이 광경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귀한 가르침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남자는 저보다도 훨씬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직업이 음악인이지만 한 번도 거리의 예술가들의 안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의 생계가 달려 있는 성냥을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저는 음악을 대하는 저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이때의 일을 교훈삼아 파데레프스키는 노년에 폴란드의 정치가가 되어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많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두 렙돈의 과부의 모습처럼 지금 있는 것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지금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푸는 헌신을 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봉사와 선행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게 하소서. 

오늘, 이주, 이달에 할 수 있는 선행의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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