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하노이에서 이틀째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호치민에서 느낄 수 없는 코끝의 차가운 느낌을 하노이에서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0^
오늘은 김남국 선교사님의 <내가 널 쓰고 싶다>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누군가에 화를 내는 것,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 안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헤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음"를 망각한 교만의 죄가 자리 잡은 증거이겠지요.
실제 살아오면서 많이 느끼게 되는 데요,
큰 소리로 성을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더라구요. ^0^ 정말 그렇죠?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냈다.
홍해를 가르고 나와 광야를 살아갔다.
그동안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왔다.
그런데 그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쳤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불순종한 세대로 간주하셨다.
(중략)
지금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온 모세에게 하나님이 너무하신다 싶은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친 벌치고 심하다고 생각하는 가?
그 만큼 순종했는 데 모세가 억울한 것 같은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내가 누군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가 죄인이고 내가 얼마나 목이 뻣뻣하고 얼마나 교만하고 악한지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 편을 드는 것인다.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
80세에 아무것도 못하고 광야에 양이나 치다가 죽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택하여 아주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다.
애굽의 바로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한낱 인간이 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면 홍해가 갈라지게 하셨고
쓴물에 나뭇가지를 던지니 단물이 되는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다.
아로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내종 모세"라고 모세 편을들어 주셨다.
오히려 그를 공격한 자를 징게하시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를 지키셨다.
오늘날 우리가 "모세 모세"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써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오늘 발하며 바위를 두 번 챠서 물이 나오게 했고,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어떤 대접을 받기 원하는가?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높은 산이 아니라 정말 오름직한 산이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막말해도 괜찮고
개나 소와 같은 대접을 받아도 좋은가?
자존심이 있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다.
성도에게는 배알이 있으면 안된다.
자존심은 죄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도
우리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살아간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 많이 받으면 받을 수록 자신을 더 대단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 능력, 돈이 다 누구로부터 왔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세워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모세도 자신이 대단해 보인 것이다.
자신이 다르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겨 그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것, 이것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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