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어제 하루 시간을 내서~
방학내내 집에만 있어 답답해 하는 둘째를 위해 가까운 바닷가를 다녀 왔습니다.
저도 모처럼 대하는 넓은 바다와 바다바람, 바다내음 등이 너무 좋았구요,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조정민 목사님의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라는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세상은 뒤늦게 프레임 전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 전쟁의 목적은 상대편을 누르고 내 편을 늘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목적으로 프레임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삶의 의미와 일츼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사고의 프레임을 바꾸어 주셨다.
지친 표정과 초점 잃은 두 눈을 한 채 일터에서 한숨짓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찾아가셨다.
"언제까지 고기만 낚을래? 나를 따라와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줄께."
사람을 낚다니? 낚시의 프레임을 바꾼 이 한마디로 위대한 사도가 탄생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앙의 낡은 프레임을 새 프로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 갇힌 눈을 들어 성전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의례적예배에 묶인 시선을 각자의 내면 깊은 곳으로 향하게 인도하셨다.
여전히 무덤 안을 확인하는 발걸음에 부활생명의 날개를 달아 주셨다.
그리고 일의 프레임을 통째로 바꾸어 주셨다.
생존을 위해 생명을 갉아 먹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생존을 뛰어넘는 일에 도전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낚시 바늘이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죽은 목숨이다.
예수님은 그 이미지 프레임을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다시 각인시키신다.
죽은 목숨과 같은 물고기를 살리는 것도 어부의 몫이다.
그런데 한낱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아서 살리는 일이라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영원한 죽음에 빠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낡은 프레임을 부수신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 영생의 양시을 위해 일하라.(요6:27)"
우리 각자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저 사람은 왜 저토록 일에 열심인가? 이 사람은 왜 이토록 게으른가? '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일 때문인가? 아니다. 일하고 있는 그 사람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일의 의미를 놓친 사람을 방관하지 말고,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 사람을 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지금이 추수 때임을 알려 주셨고, 낫도 이미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막4:29, 요4:35).
'사람 낚는 어부'라는 새 프레임이 바로 그 낫이 아니겠는가?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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