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식의
난(難‧亂‧蘭)수필 1
사랑이 사는 곳
사랑이 있다면, 사랑의 원형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아직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것은, 예술을 한다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사랑이 서식함직 한 곳을 헤집으며 그 흔적을 탐사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추정하여 소개한 곳은 다음과 같다.
‘문 잠긴 빈집’ ‘알전구 켜진 장미 여관’ ‘동시 상영 영화관’ ‘불 꺼진 병동의 낭하’ ‘바닷가 비누거품으로 만들어진 관속’ ‘모로코의 쇠락한 골목’이나 ‘안개 낀 12개의 산비탈 또는 가로지른 6개의 고속도로 어디 쯤’ ‘찔레 덤불 아래 엎어놓은 사기 사발 속’ ‘둔황(敦皇)의 허름한 여관방’ ‘쇠북소리 들리는 내속리 마을’이거나 ‘별들이 우르르 몰려간 곳’ ‘먼지가 꽃처럼 떠다니는 회전문의 출구’.
나 역시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찾아 헤맸다. 내가 얻은 결론 또한 다르지 않으며 다만 몇 곳을 추가하고 싶다. 내가 찾는 사랑 또한 친숙하고 익숙한 곳, 이를테면 아파트 거실이나 안방에 거주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상상하는 곳은 대충 아래와 같다.
북극의 유빙(流氷). 펜 로즈의 무한계단 위, 뫼비우스 띠의 배면. 닿을 수 없는 안개의 중심, 끝없이 확산되는 동심원의 언저리, 성긴 눈발 흩날리고 귀신울음 소리 들리는 자작나무 숲. 넙치 무리가 무덤처럼 엎뎌 있는 늦가을 수족관. 퇴화한 쥐 눈의 가오리가 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파묻히는 모래톱. 시간과 또 다른 시간이 맞물리는 협곡의 조야(粗野)한 틈새…. 아무튼 어디 먼 곳에, 그곳이 어디든.
푸에토리코 출신의 맹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가 부른 노래 <한 때 사랑이 있었어요(Once There Was A Love)>가 들린다. 청아한 목소리에 한 자락 애수가 깔려 듣는 이의 깊은 곳 마음속 현(絃)을 건드린다.
‘한 때 사랑이 있었어요~/한때 내게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사랑이 있었죠~/그러 나 없었던 일로 여기려고 해요~/한때 사랑이 있었어요~/그러나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인걸요~’
그래, 한 때 사랑이 있었던 듯하다! 그대에게, 나에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그런데 그것이 아득한 옛날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자못 수상하다. 누가 그랬던가? 세월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고. 그것은 호사가의 췌언(贅言)일걸.
처음에야 누구에게든 사랑의 형상이 시퍼런 깃발처럼 펄럭이고,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기도 해, 유령처럼.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재로 만들더군, 알다시피. 몇 가닥 불씨가 구슬피 저항하다 바스러지더라니까, 불량 과자처럼.
* <<시선>> 201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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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수필을 쓰면서 항상 ‘이것이 아닌데….’ 하는 답답함과 목마름을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접하는 글의 내용과 구성이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았어요. 목가적인 자연예찬, 일상과 주변의 사소한 일, 오래 전의 아련한 추억담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라니까요. 저 또한 그런 풍조에 편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들던 차 <<시선>>의 연재 제의를 받았답니다.
‘김창식의 난(難‧亂‧蘭)수필’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산뜻한 글쓰기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산문으로 풀어낸 시, 시로 압축한 산문’, 그러니까 자유로운 발상과 깊은 내용에 더하여 그럴 수밖에 없는 내적 절실함과 치밀한 논리로 직조된 글쓰기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카프카적인 삶의 부조리와 머뭇거림을 헤세 유의 서정적이고 자기성찰적인 문체로 풀어낸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왜 글을 쓰는가 자문합니다. ‘생의 숨은 뜻을 찾아서. 삶의 형적을 더듬기 위해. 방황하려고. 방황하는 한 노력하니까. 모험하려고. 모험하지 않는 것도 모험이니까?’ 글쎄요. ‘그냥, 그저. 대책 없이!’가 차라리 그럴 듯해 보이는군요. 그렇다 해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동료 문인은 물론 독자 여러분과 널리 소통하고 싶군요. 저에게 소통이란 기쁨과 함께 때로 외로움, 결핍을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 '난(難‧亂‧蘭)수필'은 수필가 김창식이 새롭게 창안한 개념입니다.
용어에 대한 저작권과 판권은 온전히 수필가 김창식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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