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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2)

by 안규수 2018. 3. 1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일과 모든 환경에 대해 ~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분의 섭리를 믿기에~ 

감사를 올려 드리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도 토저 목사님의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프랜시스 톰슨(Francis Thompson, 1859~1907. 영국의 시인 및 금욕주의자)은 〈천국의 사냥개〉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나는 이 시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바로 제목 때문이다. 
아무리 시의 제목이라 해도 하나님을 천국의 사냥개에 비유하는 것은 나 같으면 도저히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꽤 괜찮은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인이 여러 해 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 다녔는지를 말한다. 
이 시가 뛰어난 이유는 시인이 오랜 세월 그분을 피해 다녔지만 그분은 언제나 그를 쫓아오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감정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분이 언제나 내 뒤를 밟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아, 내가 네 뒤를 늘 따라왔다. 네가 어릴 적 주일 오후에 먼 길을 산책할 때 내가 네 뒤를 따랐다. 
너는 긴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철로를 따라 내려와 바깥쪽으로 나가 숲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긴 산책길에서 자연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비참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도박장이라는 곳에 가서 돈을 따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모임에 가입해서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손을 댄 적도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해보았다. 그런 것들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17세였던 나는 밖에 나가 즐겁게 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돌아오면 늘 비참함을 느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늘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그만두었고, 헨리 수소(Henry Suso, 약 1296~1366, 독일의 신비가)의 말대로 ‘오류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왜 내게 일어났을까? 이 의문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은 헨리 수소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영원한 지혜는 “내가 나를 위해 너를 택하여 내 영원한 섭리의 품 안에 품었노라. 
네가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내가 너를 자주 붙들어주었노라”라고 말한다. 
또 수소에 의하면, 지혜는 “네가 창조되지 않은 내 신성(神性)을 알려면, 육체로 고난당한 나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육체로 고난당한 분을 아는 것이 영원한 복에 이르는 가장 부드러운 길이다.

이 말이 너무 시적(詩的)이고,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좀 쉽게 풀어보자.

내가 너를 
자주 붙들어주었노라

우리는 타락해서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들어보라! 
하나님은 “네가 영원한 내 신성을 알려면, 육체로 고난당한 나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고난 받은 구주 안에서는 누구나 머리를 들 수 있다. 
믿음으로 고난의 주님께 온 관심을 집중하며 그분께 가까이 가도록 힘쓰자.

“저 높은 영성의 고지까지 날아올라갈 힘이 없다면 예수님의 상처 안으로 숨어라”라는 
토머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스콜라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및 철학자)의 말을 가슴에 새기자.

당신은 높이 날아오를 수 없지만 예수님의 상처 안으로 피할 수는 있다. 
영원한 지혜의 음성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음성이 이미 당신에게 들리고 있는 것이며, 
당신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육체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죄를 고난 가운데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야 말로 놀라운 소식이 아닌가!

오, 주여!
모든 것을 분별하시는 당신의 두 눈이
내 가장 깊은 뜻을 꿰뚫어보십니다.
내 행위, 내 말, 내 생각,
내게서 일어나는 그 무엇이라도
하나같이 당신에게 드러납니다.
나의 앉음, 나의 일어섬,
백주(白晝), 깊고 깊은 밤,
내 길, 내 베개 그리고 내 잔이
모두 당신의 눈에 보입니다.

_ 존 Q. 애덤스 (John Q. Adams)

<모든 것을 분별하시는 주여>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 A. W. 토저 / 규장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요한복음 17장 3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요한복음 20장 31절

하나님, 열심히 놀아도 보고 공부도 해보고 일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이 늘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당하신 주님을 알 때 영원한 복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께만 온 관심을 집중하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초대교회가 한창 박해를 받고 있던 시기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총독인 필리니가 
로마 황제 트라이얀에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황제 폐하! 저는 충직한 부하 몇 명을 위장시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나가게 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언제나 그들의 신인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자주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 즐거워하기도 하는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과 황제 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 부하들이 느꼈던 가장 확실한 사실 중에 하나는 그들에게 사랑이 있으며 또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해를 피해 예배하기 위해 도망간 카타콤의 벽에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아주 잘 나타내주는 글이 하나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천국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
진정한 사랑이 있을 때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공유하고 원수를 위해서도 섬기고 기도하는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원수조차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을 넘치게 주소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사랑한다고 의지적으로 기도해 바꿉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