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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박완규님의 아침편지

by 안규수 2014. 4. 3.


 

 

 

 

 

 

 

 

 

 

 

어느 독자분이 보내 주신 글...

  

 

 

 

 

 

 

 

 

 

 

 

 

 

오늘 글은 어제 제가 보낸 ‘학력인플레, 어찌할까요?’라는 글을 읽고 000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이분의 양해 하에 올려드립니다. 000님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중책을 맡고 계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이분이 보내주신 글을 원문 그대로 실어서 같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분의 직책과 맡고 계신 일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까닭은 현직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니 이 점 널리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좋은 글을 읽습니다. 사실은 바쁘다는 것은 핑계가 되겠습니다만 그래도 글의 제목에 필이 꽂히면 틈에 관계없이 진솔한 이야기의 맛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본문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박 사장님의 귀한 글을 읽으면서도 ‘답장을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매번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아이고 또 빚을 졌구나.”하는 생각만 하였지 답장을 한 번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내주신 학력인플레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라도 답장을 하는 것이 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외다리 타법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립니다.


저는 1949년생 소띠입니다. 저 혼자만 청년이라고 고집을 부릴 뿐 나이를 제법 먹은 사람이지요. 저는 나이 스물이 되던 1968년에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 중에 하나인 00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무려 46년 전의 일이네요.


그 당시는 박 사장님 말씀대로 대졸과 고졸사원의 입사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공고를 졸업한 우리친구들은 포항제철 조폐공사 제일제당 등으로 3학년 때 실습을 나가 그 회사에 그대로 입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00기업에 2번 낙방을 하고 3번째 간신히 합격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공고를 졸업한 학생으로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하였습니다만 경제개발 초기 사절이었고, 재건 국수도 실컷 먹을 수 없었던 시절이라 저의 00 입사는 주변에서 대단한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저에게 대학을 가야한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몰래 부산 동아대에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합격을 하고 입학금을 내야 했지만 그때까지 우리 집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백을 하고 입학금만 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꾸중 반, 타이름 반의 소리를 듣고 결국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00에 입사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곁에 계신 듯한 저의 아버지는 3년 전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00에 들어가면 전철을 공짜로 탈 수 있다. 두 번째는 네가 받는 월급은 선생님보다 더 많고 가끔 극장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장남인 네가 이 집안 형편을 몰라서 대학이냐?”

 

그 당시 까까머리였던 저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아버지에게 대학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대신에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면 내 힘으로 대학을 다니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결심은 15년 후에나 실현되었고 다시 10년 후에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그래도 저는 한 많은 고졸 입사자입니다. 사실 공부를 더 하였다고 하지만 제가 거기서 무엇을 터득하였는지 지금도 머릿속이 공허합니다. 

 

박 사장님 말씀처럼 그야말로 보험증이었지요. 그것도 입사하고 난 이후의 졸업장이기 때문에 나만의 보험증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학력 콤플렉스의 허전함은 다소 사라진 것으로 보아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고졸입사의 핸디캡을 가지고 00의 부장, 부처장, 처장을 역임하고 본부장을 거쳐 전무가 되고 5년 전에는 00의 최고봉인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 국가정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 하는 00000의 이사장이 되어있습니다.


그동안은 학력 콤플렉스가 나에겐 무한 결점으로 작용하였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그 콤플렉스가 무한 장점으로 바뀌면서 감히 대졸자들이 범접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내는가 하면, 모든 대형발전사고의 수습을 진두지휘를 하고, 발전소 효율향상과 정지를 줄이기 위한 역발상 등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졸로 입사하지 않고 정규 대학을 나왔다면 콤플렉스는 없었겠지만 부장이나 처장쯤하고 정년퇴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4년 동안 교대 근무를 하였고 현장을 뽈뽈 기어다니다시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때 흘린 땀과 제가 맡은 기름 냄새들이 지금은 밑거름이 되어서, 조직을 맡고 있는 장이 되어서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선두에 서서 지휘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국가의 동맥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국의 마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의 기술을 이겨야 한다는 결심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전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고 졸업자인 제가 사장으로 임명될 때는 누구도 의아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당연히 “다음에 우리 사장님은 저 분!”하면서 많은 직원들이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우리직원 중에는 서울대와 연고대 그리고 해외 유학파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해박한 이론과 저의 오랜 경험을 합치면 너무나 잘 맞는 찰떡궁합이 되어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 많은 아이디어들을 내놓곤 합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나는 사장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고를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방패막이이자 맏형이다.”

 

마땅히 그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고졸자를 뽑으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졸 입사자를 선발하였는데 다음 주에 최종 면접을 봅니다. 최종면접에는 제가 직접 참여해 그 사람들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처음에 고졸출신의 직원을 뽑자고 하니까 대부분의 엘리트 직원들은 찜찜한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훌륭한 돌담이나 보기 좋은 돌담을 쌓으려면 큰 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큰 돌을 받쳐야 하는 작은 돌이 더 귀하게 쓰일 때가 있는 법이다.”

 

저는 고졸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40년의 회사생활 방법을 전수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이 친구들 중에서 제 2의 제 3의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이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자격증을 따라! 대학에 입학해라! 반드시 야간대학이라도...”

 

만약에 그 의지에 틈이 보이면 군에 입대시키고 재입사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작년 신입사원의 입사식 날에 그 직원들의 부모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급여를 받으면 애들 대학등록금으로 몇 년 간 저축을 하셔야 합니다. 그 조건으로 입사를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애들은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 저의 자식입니다.

 

학력인플레의 불편부당한 쓴맛을 고칠 수 없다면, 그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남이 보지 않는 구석진 곳에 가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선배들의 역할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앞서 경험한 선배들의 사랑을 담은 매질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장님처럼 공고를 졸업하고 그동안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의 생각을 정리하다가 쓰다 남은 몽당연필을 한 움큼 챙기는 도중에 박 사장님께서 오늘 아침에 보내주신 글을 읽고 저의 생각을 잠깐 전합니다.

 

어렵고 어두운 구석에 희망을 밝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00000 이사장  

                                    0 0 0  드   림

 

  

 

 
 

 

 

 

 

 

 

오늘 사진은 우리 신문사 김광중 기자님이

봄비 오는 날에 보성 녹차밭에 가서 담아온 풍경입니다.

참 이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