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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삶에 맞추어 말씀을 이용하려 하는가?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조율하고 있는가?

by 안규수 2021. 2. 2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사탄이 삶에 맞추어 말씀을 이용하려 한다면,

예수님은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삶의 자리에 맞게

말씀을 가위질로 재단하여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다면,

예수님은 말씀의 견적에 따라

삶을 재단하여 양복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그 중 한 가지를 택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로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는 멸망의 길이고,

하나는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마 7:13-14). (오늘의 나눔 본문중에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에도 조동천 목사님의 <내 인생을 변화시킨 세가지 질문> 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파트2. 어떻게 살 것인가? 01. 말씀에 대한 도전은 말씀으로 풀어라

 

사탄이 예수님에게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라고 펀치를 날리자,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면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십니다.

 

사탄과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 즉 말씀으로 불꽃 튀는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석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무엇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대결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삶에 맞추어 말씀을 이용하려 한다면,

예수님은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삶의 자리에 맞게 말씀을 가위질로 재단하여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다면,

예수님은 말씀의 견적에 따라 삶을 재단하여 양복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그 중 한 가지를 택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로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는 멸망의 길이고, 하나는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마 7:13-14).

 

마귀가 “기록되었으되”라고 펀치를 날리자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라며 말씀으로 응수하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기에 삶의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처럼 말씀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의심하고 회의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응수하여 사탄의 계략을 이겨야 합니다.

 

누구든지 신앙생활 중에 말씀이 의심스럽고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본문의 '기록되었으되'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말씀을 말씀되게 하라.

살아가면서 말씀 때문에 시험을 받고, 말씀 때문에 눈물을 흘리느냐?

그래도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라. 말씀에 생명이 있고, 말씀에 해답이 있느니라."

 

예수전도단 화요 모임의 어느 찬양 인도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한밤중에 주무시다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이듬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다가 설상가상으로 사기까지 당해 자살하셨습니다.

당시에 졸지에 부모를 잃은 그를 가장 괴롭힌 화두는 고아도 경제적인 곤란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고 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크리스천 모임에 나갔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쓰러진 아버지를 업고 택시를 탈 때도,

어머니의 산소호흡기를 뗄 때도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울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추운 독서실에서 잠을 청할 때도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함께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의심스럽던 모든 성경 구절이 말씀 안에서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히 4:15)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이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소유한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시험 들 정도로 삶이 고통스럽습니까?

그럼에도 말씀으로 더 깊이 나아가십시오.

얕은 물가에서 찰랑거리지 말고, 더 깊은 말씀의 바다로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말씀을 종합적으로 보십시오. 거기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실력을 의지하여 밤새 그물질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의지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만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말씀을 세속의 논리로 풀 때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가령,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라는 약속의 말씀을 놓고 “믿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취직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배우자도 만날 수 없었고

명예도 돈도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에 난 상처 때문에 말씀을 버리겠습니까?

 

그럴 때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예수님의 시험을 생각하고 “또 기록되었으되”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

 

더 좋은 것을 위해 지금 안 주는 것이고, 찾을 수 없는 것이며,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 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59:1-2

 

이제 말씀의 잣대를 따라 말씀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시험에 빠지게 되는 순간, 말씀으로 말씀되게 하십시오.

마귀는 “기록되었으되”로 또 유혹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처럼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3:1-5

 

미국의 울드 부부는 늦둥이로 얻은 아들인 아더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5살 때 알게 됐습니다.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아더였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녀였기에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해 울드 부부는 키웠습니다.

말을 못 했음에도 특수학교에 보내 적합한 교육을 받게 했고 주일에는 교회에 데려갔습니다.

성인이 되고서는 공장에서 일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그렇게 아더의 나이가 29살이 되던 해 공장의 새로운 감독관으로 온 캐럴은

아더가 말은 못 하지만 말에 대한 반응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캐럴은 말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비록 진도는 느렸지만 아더는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컴퓨터로 생각을 적을 수 있게 된 아더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드디어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말할 수 없지만 29년간 부모님을 사랑했던 아더처럼

태초부터 지금까지 나를 향한 주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주님께 모든 삶을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온 천하에 충만한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께 진심을 담아 사랑을 고백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