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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승옥의 '무진기행' 을 읽고

by 안규수 2021. 8. 6.

 

「무진기행은」은 1인칭 소설이다. 1964년에 발표되었던 이 소설은 1인칭 문장의 섬세한 힘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1인칭 문장의 주어인 ‘나’에 관하여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나’는 아마도 한국어 문자의 역사 속에서 비로소 개인화를 완성해낸 ‘나’일 것이다. 이 ‘나’는 타락하고 비겁한 ‘나’고, 더러운 세상에 살아가는 ‘나’고, 이미 더럽혀진 ‘나’다. 그러나 이 ‘나’는 남이 아닌 바로 ‘나’인 것이다. 이 ‘나’는 역사나 전통이나 제도나 사회로부터 독립된, 나만으로서의 ‘나’다. 그러므로 이 ‘나’는 강력한 ‘나’고, 우리가 아닌 ‘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나’는 그 뒤에 오는 시대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욕망의 분출 주체로서의 ‘나’다.”

 

김훈은 이렇듯 ‘나’를 개인화해 낸 것이 「무진기행」의 문학적 성취로 보고 있다. 이 소설이 출간될 때 나는 중학생으로 4.19와 5.16의 역사적 격동기에 있었고, 이 소설을 처음 읽은 때는 1980년대 초이다.

무진기행의 앞부분에 나와 있는 무진에 대한 묘사가 이 소설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등하는 모든 것을 무진의 명산물인 안개를 통해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에게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이렇듯 무진의 명산물인 안개는 상징적으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허무虛無를 말하고 있다. ‘무진霧津’은 소설을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적인 배경이 된 공간은 순천이라는 것과, ‘무진’은 혼돈, 안개, 밤 등의 모호하고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작가 김승옥은 밝히고 있다. 이는 4.19, 5.16 등 암울하고 혼돈한 당시 시대적 배경과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처음 만난 미친 여자가 던져준 청년 시절의 참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을 쫒아 보려고 행하던 수음手淫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안 풀리고 꼬일 때 마다 찾았던 고향 무진, 그러나 고향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기 보다는 도리어 초조함 속에서 자신의 암울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속의 '나'는 윤희중이다. 그는 서른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이다. 이혼녀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으며, 며칠 후면 그 아내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될 몸이다. 그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잠시 동안의 휴가인 셈이다. 그에게 무진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는 이미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출세 가도에 올라 있다. 그는 무진에서 그를 존경하는 후배인 박, 중학 동창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조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음악교사 하인숙을 만난다. 문학 소년이었던 박은 그를 우러러보고, 속물인 조는 갑자기 출세한 그를 동류同類로 취급한다.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은근히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과 스스럼없이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 하고 그와 일주일 동안만 멋진 연애를 경험하고 싶다는 하인숙에게서, 그는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다음날 그는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한다. 서울로 가기로 작정한 후,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쓴다. 이 편지에는 윤희중이 하인숙에 대한 진심과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이 편지를 곧바로 찢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하인숙에게 전달되지도 못하는 이 편지의 종말은 그가 결국은 무진이 아니라 서울을, 하인숙이 아니라 아내를 선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진기행」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하나는 서울로 인식되는 일상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무진이라는 탈일상의 공간이다. 아내와 제약회사 상무 자리가 있는 서울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가치의 중심이다. 이에 비해 안개와 바다, 자살한 여인의 시체와 하인숙이 있는 무진은 안개속이고 탈속적인 공간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무진으로의 여행은 고향으로의 회귀나 순수함의 복원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경험과 상처를 확인함으로써 이제는 서울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또 하나,「무진기행」은 화려한 문체에 있다. 그것은 작가 김승옥의 독특함이지만 이 소설에서 더욱 빛이 난다.

 

‘여름 밤,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 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소설의 말미는 시작과 같이 이정표로 막을 내린다. 무진을 떠남을 알리는 팻말이다. 처음 ‘무진Mujin 10km'를 알리는 이정표는 ’나‘가 혼돈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면, 마지막 팻말의 ’나‘는 혼돈에서 벗어나 환속還俗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말일까? 하인숙 에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부끄러움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보인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 김승옥이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이다.

이 소설 속 윤희중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라한 시간, 내 의식 저편에 정지된 화면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시골 고향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에 파병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 나는 새장에 갇힌 한 마리의 조롱새, 날개가 퇴화해 버려 하늘을 날 수 없는 조롱새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갈등과 고민 속에서 끝없는 미로와 같은 길을 걸어 온 나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은 안개로 상징되는 허무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으로 돌아오는 한 젊은이의 귀향 체험을 통해 사회조직 속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