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김형석교수가 수필가로서 평생에 걸쳐 쓴 글들 가운데 알짬만 모은 산문집이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하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적 물음을 마주하게 하는 철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 1959년에 펴낸 『고독이라는 병』, 이어 1961년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이 두 권의 책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 한 베스트셀러였다. 1920년생인 저자는 1954년부터 1985년까지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퇴직 이후로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집필과 강연은 계속되었고, 일생 동안 써온 수상과 수필을 엮어 2008년『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를 펴냈다. 이 책의 표제작이자 첫 번째 글인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새로 집필해 추가했다.
젊은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서 지울 수 없었던 고독,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서부터, 인연, 이별, 소유, 종교, 나이 듦과 죽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애써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그의 ‘삶의 철학’ 전반을 엿볼 수 있다. 개와 고양이와 어린 자녀들이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일화, 함께 수학했던 시인 윤동주와 구상시인 대한 기억, ‘철학 교수’라고 좀 별난 사람 취급을 받곤 하는 처지에 얽힌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도 위트 있게 풀어낸다.
1부 ‘잃어감에 대하여(상실론)’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친구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은 글들을 포함해, 상실과 고독, 사랑에 관한 글을 엮었다. 2부 ‘살아간다는 것(인생론)’에는 인생의 의미, 삶의 과정 자체의 소중함,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지혜 등 그의 인생론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렸다. 3부 ‘영원을 꿈꾸는 이의 사색(종교론)’에는 삶의 여러 물음들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오늘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을, 4부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에는 저자의 젊은 시절의 글들을 포함해, 수필가로서 그가 명성을 얻은 이유를 알게 해주는 주옥같은 글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의 25편 작품 중에서 딱 한 편을 고르라고 하면 3부 「영원을 꿈꾸는 이의 사색(종교론)」의 첫 작품 ‘처음과 마지막 시인’을 택하겠다. 이 짧은 한 편의 글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진원지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와 구상 시인의 「고백」이다. 청년시절 좋아했던 이 시들이 이 글에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 온 것이다.
김형석교수의 글은 문장에서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고, 내용에는 철학적 논리가 정연하다. 문학적 향기는 아무래도 글쓴이의 인품과 비례할 테고, 철학적 깊이는 작가의 내공과 관련되어 있다. 철학적 깊이는 하루아침에 ‘뚝딱’ 채워질 수 있는 물통의 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단한 사색, 조용한 관조와 끊임없는 독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삶의 자세가 호응相應되어야 한다.
한 세기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노교수의 진솔한 모습이 담긴 이 책이야말로 모름지기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묻고 있고, 그 답이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 장수의 비결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주님이 어머니의 하늘만큼 높은 사랑, 아내의 바다보다 깊었던 사랑을 보시고 그에게 건강한 백수의 기쁨을 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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