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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부끄럽게도 나는 열정을 잃었습니다. 행위로 받는 삶에만 익숙해졌지요

by 안규수 2021. 8. 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무언가를 할 때 의무와 책임이 따릅니다.

그 무게가 무거워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버팁니다.

 

놀고 싶지만 회사를 다니고

하기 싫어도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때문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연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의무와 책임이 사라지면

내 자유의지만 남습니다.

 

만일 어떤 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의무감도 없고, 대가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내 자유의지는 어떻게 될까요?

 

부끄럽게도 나는 열정을 잃었습니다.

행위로 받는 삶에만 익숙해졌지요.

 

의무가 사라지면 사랑이 남아야 하는데

사랑까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가라도 따라온다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눈에 보이는 보상도 없으니

마음의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이 있다고 믿는 자의 모습일까요?

답답함을 솔직히 내어놓고 주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주님, 저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주님이 제게 주신 말씀과 은혜 때문에

붙잡고는 있는데 솔직히 하기 싫어요.

 

그러고는 이런 일기를 썼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주일에 사랑, 희락, 화평에 관한 말씀을 들었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갈라디아서 5:22

 

그중에 희락, 기쁨이란 단어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나는 언제 기쁠까?

어떤 소식을 들을 때 기쁨을 느낄까?

 

정답을 이미 다 알지만

다시 한번 주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옛날 작은 베들레헴 마을에 소식이 들렸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나도 이 얘기를 들었다면 함께 기뻐했을까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기뻐하나요?

 

근원적 기쁨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데

여전히 외부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일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편 37편을 묵상하는데

다시 한번 ‘기쁨’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가 또 넘어진 것 같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너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란다.

 

네가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내가 너를 잡고 있기에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네 길을 내게 맡기고 의지하렴.

 

내가 너를 도우며 네 의를 빛과 같이,

네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할 거란다.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말씀으로 기쁨의 이유를 다시 찾게 하셨고,

다시 일으키실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은혜의 힘까지 더해주셨지요.

 

나는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한 번도

내게서 시선을 떼신 적이 없습니다.

또다시 그분의 사랑을 맛보며 기쁨을 채워가는 중입니다.

그저 ‘주님은 사랑이시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 나에게 꼭 붙어있으렴, 이화하하(이화선) / 규장

 

† 말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 시편 37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빌립보서 4장 4절

 

† 기도

주님, 나의 기쁨의 이유가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주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디모데전서 2:1-7

 

발달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시설에서 일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말씀으로 축복을 해주고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간단한 대화도 불가능한 아이들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성도의 질문에 목사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셨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다음날부터 성도는 아이들을 마음껏 축복하며 틈나는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되지 않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어 말을 시작한 아이들도 생겼고,

그중에는 복음을 이해하고 전하는 아이들까지 있었습니다.

말을 못 하는 아이들도 미소가 많아지고 상태가 안정되어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부모님들도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주님이 주신 복음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완전한 복음입니다.

나를 구원하고 나를 변화시킨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내 생각과 편견으로 제한하지 말고 시시때때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믿게 하소서.

복음을 전할 가능성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맙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