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생이던 나이 열여섯, 새벽이면 은은히 들려오는 낙성교회 종소리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탄생한 것이죠. 어느새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입니다. 그동안 삶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때마다 내 의지가 아닌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이끌려 지금까지 살아온 느낌입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 창밖 소나무에 희미한 달빛이 걸려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늙음을 향하는 길이고 늙는다는 것은 곧 완성으로 가는 길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떫은 감이 홍시가 되기까지는 내면의 떫은 것을 익혀내는 저 발열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홍시는 늙어서 그저 완성된 것이 아니고 완성이란 시간의 변화가 아닌 영적 변환입니다. 나는 신앙생활에 덜 익은 떫음이 그대로 남아 하나님 앞에 서면 부끄러운 몸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생회장을 맡아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며 시작한 신앙생활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무슨 마귀에 홀린 것처럼 교회를 떠나 혼탁한 세상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무려 20여 년을 떠돌며 자유분방하게 살았습니다. 내 나이 마흔한 살이 되니 술에 찌들어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밖에 없는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무척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직장도 가정도 흔들리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한때 죽움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지친 내 영혼을 교회로 이끈 손길이 있었습니다. 문원식 장로. 그가 내 손을 잡고 이끈 곳이 순천은성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 예배 시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스무살 무렵 교회를 떠나 마흔이 넘어 다시 부르심을 받고 주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주여! 이 불쌍한 영혼을 살려 주소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목사님이 따라 나오셔서 부르셨어요. 돌아온 탕자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뜨거웠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해 교회를 섬기고 믿음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교회를 떠나 있었던 어두운 시절에서도 주님은 날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스물한 살, 군대에 입대해서 1년 만에 베트남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근 1년을 최일선 전투 중대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정글에서 작전 중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적 B40 포탄이 바로 옆에서 터져 선임하사와 친한 병사 한 명이 즉사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으니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렵고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손길은 날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항상 먼발치에서 날 바라보고만 계셨을까요?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구상 시인이 말년 병석에서 읊었다던 이 시가 보잘것없는 나의 흉중(胸中)을 마구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 「고백」입니다.
어느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하고 읊었지만
나는 마음이 하도 망측해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고 어쩌구 커녕
숫제 두렵다.
일일이 밝히기가 민망해서
애매 모호하게 말할 양이면
나의 마음은 양심의 샘이
막히고 흐리고 더러워져서
마치 칠죄(七罪)*의 시궁창이 되어 있다.
하지만 머리 또한 간사하여
여러 가지 가면과 대사를 바꿔가며
그래도 시인이랍시고 행세하고
천연스레 진.선.미를 입에 담는다.
......
막상 그 죽음을 떠 올리면 이건 더욱
그 내세(來世)가 불안하고 겁난다.
이 시는 다름 아닌 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시를 읽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새벽기도 시간에 탕자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암담 속에 잠겨있다가 교회 십자가를 바라보고는 욥의 심정으로 주님을 부르짓었습니다.
“주님, 저를 이 흉악에서 구하소서….”
구상 시인과 윤동주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나는 이 시를 통해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길 기도한 동주의 마음과 속죄를 간구하는 구상의 영혼을 겸허히 받아서 남은 생 주님 뜻대로 살다가 부르심을 받고 싶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주에게서 맑은 삶을 깨우침 받고, 구상 시인의 시를 통해 주신 주님의 계시(啓示)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는 나의 뜻이 아니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늘 이런 방법으로 나를 깨우치십니다. 내 인생은 아무리 바둥대도 결국은 하나님 손바닥 안이었습니다. 오늘의 나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덕분입니다. 잘 늙는다는 것은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의 등을 내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그 아래에서 쉴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 남은 생 잘못된 습관, 부정적인 생각,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게 하소서. 또한 자신에게 놀라운 일을 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소서. 내게 구원의 열쇠로 내 삶을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능력으로 채우십시오. 주님!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내 생각과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아멘!”
*칠죄(七罪) : 잠언 6장 16~19절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과 눈의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를 이간한 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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