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전 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날도 온종일 비가 내렸다. 늘 함께 다니던 우리 반 동네 친구들은 일찍 집에 가고 당번이라 혼자 남았다. 그날따라 교실에 둔 우산을 누군가 가져가고 없어서 집에 갈 일이 난감했다. 현관에서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 거기서 뭣 혀.”
이웃 동네에 사는 옆 반 순이였다. 날 보고 싱긋 웃었다.
“나 선생님 심부름하고 인자가는 거여, 나랑 같이 가자.”
순이는 나에게 다가왔다. 평소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수줍음 많은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야, 집에 안 갈래? 얼른 이리 와.”
순이의 채근에 우산으로 들어갔다. 들 가운데 길게 뻗은 샛길을 걸었다.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우리는 비에 흠뻑 젖었다. 나보다 키가 큰 순이 젖은 옷 위로 불룩한 앞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내 어깨가 순이의 어깨에 닿지 않으려고 자꾸 우산 밖으로 나갔다. 그럴 때마다 “야, 옷 다 젖는다. 이리 바싹 와.” 하면서 나를 끌어당겼다. 내 몸이 순이 몸에 닿는 순간 난생처음 느껴진 야릇한 느낌이 서먹서먹하고 쑥스러웠다. 순이도 얼굴에 수줍은 듯 긴장된 미소가 어렸다.
집에 가는 길에는 냇물을 건너야 했다. 오랜 장마로 냇물이 많이 불어나 징검돌 다리가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순이는 신발을 벗어들고 치마를 걷어 올린 후 내 손을 꼭 잡고 앞장서서 내를 건넜다. 우리는 마치 물에 빠진 생쥐처럼 후줄근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가는 길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숨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우릴 새장에 가두어 두는 것 같았다. 빗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하고 아득히 멀어지기도 했다. 길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샛길을 벗어나 신작로로 들어섰다. 드넓은 들에 가득 빗줄기는 달려오고, 마을 뒤 우뚝 솟은 징광산은 빗속에 묻혀 있었다. 어느덧 갈림길에 들어섰다. 순이와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순이는 말없이 발길을 우리 동네로 향했다. 날 먼저 데려다주고 자기 집에 갈 생각이다. 순이와 동행이 좋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우리를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그는 이따금 무슨 이야길 하면서 웃기도 했지만 누가 우릴 볼까 봐 조바심이 나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맙다, 나 먼 저 갈게.”
작별 인사를 하자 그는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우산 안으로 다시 끌어드렸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 중학교에 진학하니?”
“응”
“난 못 갈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해라.”
그 말을 하는 순이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순이 머리카락으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공장에 취직하면 야간학교에 갈 거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날 밤 나는 몸살감기에 걸린 듯 몸에서 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했다. 순이의 따뜻한 체온,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던 해맑은 모습, 내를 건널 때 흰 허벅지를 드러내고 내 손을 잡고 이끌던 당찬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덧 가을이다. 나는 가끔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교정에서 순이의 수다를 들어야 했다. 그가 싫지 않았다. 다음 해 2월 졸업식 날, 재학생들의 송별가가 끝나고, 마지막 우리가 졸업가를 부르자 강당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여학생들은 이별이 서러워 목놓아 울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 그 시절 대부분 여학생은 진학을 못 하고 도시 공장에 취직해서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 학비를 도왔다.
식이 끝나고 교정에서 순이를 찾았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 눈빛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순이는 집에서 가사를 돌보다 다음 해 부산에 있는 고무신 공장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은 오고 있는 것이지요
…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날 다시 만날까요
권대웅 시인의 「아득한 뼘」 일부이다. 몇 생을 돌고 돌아 어느 봄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고 앳된 흰 얼굴에 귀밑 솜털이 보송보송한 순이, 나의 첫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