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면 가장 먼저 읽어주는 독자가 손주 지승이다. 제법 어른스럽게 조언도 해주고 비판도 해준다. 유별난 그와 나는 조손간이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 구김 없고, 천진난만하고, 밝은 그를 나는 강아지라고 부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나를 강아지라고 부른 것에 연유한 애칭이다.
그는 나와 어디든 함께 다니길 즐긴다. 문학단체인 에세이스트에 대해서도 그는 나만큼이나 좋아하고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지난가을 에세이스트 세미나가 유서 깊은 천년고찰 마곡사에서 있을 때도 함께했고, 저 지난해 경주 가을 세미나에도 함께 갔었다. 그때 경주박물관에서 진열된 유물들을 보고 약간 얼굴이 상기된 채 마치 선생님처럼 유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문우가 발길을 멈추고는 꼭 문화해설사 같다고 감탄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이런 대견한 모습에 마음이 우쭐해지면서 콧등이 시큰했다.
지승이가 두 살 때였다. 어느 날 마누라와 함께 딸 집을 방문했다. 그때 딸은 둘째를 임신해서 배가 남산만큼 불러 제 몸도 가누기가 힘든 시기였다. 지승이는 작은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홀로 놀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도 전혀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이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지승아’ 불러도 대답이 없고 우릴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놀이에만 열심이었다. 딸은 신랑과 싸우고 근 한 달 가까이 말도 하지 않고 지낸다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어린 것을 저리 두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딸은 만사가 귀찮은 듯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우선 딸 가족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기로 했다. 어린 지승이가 집으로 들어온 뒤 냉랭하던 집안에 웃음꽃이 피고, 권태로운 일상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퇴근 후나 휴일에는 함께 놀아주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산책하고…. 오십 줄을 넘긴 나이, 요렇게 날 꼼짝 못 하게 할 놈이 내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즐겁고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그해 여름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그가 태어나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신기한 듯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났다. 창밖으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육지와 바다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비행기가 하얀 구름바다 위로 솟아오르자 탄성을 질렀다. 뭉실뭉실한 산, 울창한 숲, 올망졸망한 섬처럼 온갖 형상을 빚어내는 구름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말했다.
“할아버지, 나 이 담에 비행기 조종사가 될 거야.”
그의 꿈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튿날, 온 가족이 한라산 등반을 했다. 그는 영실에서 백록담 남벽까지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면서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징징 울었다. 저 혼자 힘으로 대피소에 올라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어때,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그때부터 인근 산에 자주 올랐다. 산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가 나무와 돌 등 자연 속에서 땀을 흘리면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다. 그해 겨울에 딸 가족은 저희 둥지로 이사했다. 그때부터 그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우리 품으로 달려왔다. 마치 먹이 찾아 떠난 새가 둥지로 돌아오듯.
그가 일곱 살 때 금강산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그 뒤부터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에도 항상 동행했다. 두 번 중국 여행에서 만리장성을 관광하고, 백두산 천지에 올랐고, 태국, 일본, 베트남을 다녀왔다. 이태 전 겨울방학 때 일이다. 베트남 중부 뚜이호아, 내가 젊은 시절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전장을 40년 만에 찾은 것이다. 부대가 주둔한 모래 언덕에 앉아 검푸른 남중국해를 바라보면서 참혹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할아버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목숨을 걸고 싸웠어? 우리나라도 아닌데, 왜?”
이 따끔한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념의 틀은 허울 좋은 정치 논리일 뿐이다. 그의 정곡을 찌른 예리한 질문은 내 생각이 환영에서 깨어나는 데 일조했다. 지승이 여행 체험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다른 나라 여행은 신기하고 너무 재미있다. 세상은 참으로 넓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이뤄 세계를 날아다니고 싶다.’라고. 지난 5월, 교육지청에서 실시한 어버이날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 「아빠의 등」이란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나는 아빠의 넓은 등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참 좋다. 아빠의 등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나무와 푸른 숲, 그곳에는 새들이 지저귀며 놀고 있다. 아담한 우리 집이 있고 엄마와 나, 경민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 나의 꿈도 그려져 있다. 장차 내가 조종할 비행기다. 나는 가끔 그 비행기에 올라가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꾼다.”
그가 쓴 글 일부이다. 아빠 등을 주제로 행복한 가정 모습을 형상화한 산문으로 톡톡 튀는 상상력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어린아이들의 꿈은 자주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한 번도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린 적이 없다. 중3이 되자 외고에 가겠다고 했다. 앞으로 대학 입시 요강이 많이 바뀐 현실에서 한사코 특목고인 외고만 고집한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고 나도 조금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 중순, 나는 방과 후 지승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괜찮아요. 지승이 꿈이 비행기 조종사인 이상 분명히 가치가 있어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전남 외고 입시에 응시하여 1, 2차 시험을 당당히 통과했다.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듯, 첫 도전의 성공은 그가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가 집을 떠나야 한다. 내년 3월 개학하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한 번 어미 곁을 떠난 새는 다시는 둥지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쩐지 옆구리가 텅 빈 듯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학교로 떠나기 전날 밤, 우린 마주 앉았다.
“너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새로 열릴 세상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겠지. 너는 열일곱 살이고 네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생의 첫 페이지를 채워가는 주체가 바로 너 임을 명심하렴. 항상 네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지 말아라. 이제 가족의 품을 떠나 더 큰 세상에서 꿈을 마음껏 펼쳐라. 지승아, 알지? 세상은 너 생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너 책상 위에 붙은 이 한마디, ‘독하게 굴어, 그래야 사는 거야’….”
<이상렬의 수필생각>
'무엇을 말하고 싶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할 것이 생겼기 때문에 쓴다.' 프랜시스 스콧 피즈제럴드가 말했다.
말 할것이 생겼기 때문에, 쓰고 싶기 때문에 쓴글,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한데, 어찌 팬을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 시킨다'고 했던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감정들을 낱낱이 맛 보고 자란 지승이, 참 복이 많은 아이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따뜻하지 않는 사람이없다지 않은가.
작가 안규수, 미소에서도 온기가 느껴진다. 만나서 5분 이야기하면 긴장이 풀리고, 10분 이야기하면 밥먹하고 싶은 사람, 언젠가는 뵈올 날이 있겠지만 그날이면 별말 없어도 미소 한 번, 아수 한 번으로 그저 충분히 통할것 같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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