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1970-1980년대만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그런데 지금은 건강이 큰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정신건강을 관리하려는 흐름도 보인다.
크리스천도 예외는 아니다.
크리스천의 이혼율과 자살률, 우울증도 매년 늘고 있다.
이 땅에 ‘샬롬’(Shalom), 평강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는데, 왜 크리스천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일까?
4년 전 CGNTV 첫 출연 이후 전국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여의사가 진료하는 동네 의원 대기실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진료 시간, 체력,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내원한 이들의 목마름과 병증을 치료하는 게 너무나 벅찼다.
그래서 주님께 더욱 기도하며 내담자를 돕기 위해 애썼다.
어떤 이는 몇 번의 진료와 상담만으로도 꽃망울이 활짝 피어나듯 생기를 회복했다.
그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치유가 시작되어 최종적으로 내 확인만 필요한 상태였다.
반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어떤 말씀과 조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 정도 영성으로 무슨 치료를 한다고!’
그의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이런 마음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낙심이 되었다.
바닥난 체력으로 집에 돌아와 쓰러져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들의 무거운 짐이, 해결해야 할 죄가 제게는 너무 버겁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다.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거라.’ ‘그렇지만…
지금 제 삶도 엉망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내 이야기 같아 더 힘들었다.
실상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연약하고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 세리, 창녀와 함께하셨고
병자와 죄인을 위해 오셨다는 말씀을 붙들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 9:12,13
진료실을 찾은 크리스천의 공통 질문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하나님이 이런 벌을 내리실까요”였다.
여기에는 자기가 무언가를 잘하면 사랑받고, 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 관계가 깔려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특히 욥기를 보면 욥과 세 친구가 ‘욥이 왜 저주를 받았는지’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등장하심으로써 모든 대화가 종결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임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비롯해 소위 인간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을 발견한다.
인간의 사랑은 갈망에서 출발해 결핍을 채우려 들지만 끝내 채우지 못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차고 넘친다.
사랑하기에 아프고, 희생이 따르는 십자가 사랑이다.
이 고차원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깨달으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 열린다.
두 번째로 많은 질문은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시나요”였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경우다.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해주셔야 맞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아 답답한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을 때의 반응이다.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은 항상 그곳에 계세요. 분리불안을 겪는 우리가 그분이 어디 계시냐고 할 뿐입니다.”
의외로 많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삶에 닥쳐오는 고난에 성경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 정신건강에 큰 위협을 받는다.
미성숙한 신앙이 나와 세상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고 마음의 상처가 신앙의 성숙을 방해하기도 한다.
– 내 마음도 쉴 곳이 필요해요, 유은정 / 규장
† 말씀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 시편 25장 16~18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한일서 4장 10절
† 기도
삶의 고난 속에서 주님을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셔서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해주세요. 무너지지 않도록 연약한 마음을 붙잡아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 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일본의 농학박사인 마츠무라 교수가 해외 명문대 출신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학교 교수로 임용됐을 때의 일입니다.
마츠무라 교수는 총장을 찾아가 경쟁자보다 스펙이 낮았던 자신이 왜 뽑혔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내 아내는 수십 년 전에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네.
그런데 하루는 자기가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릴 때마다 재빨리 와서 주워주는 예의 바른 청년이 있다고 자랑하더군.
사진까지 들고와서 말이야. 세월은 오래 지났지만 그 얼굴과 이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네.
그 소년이 바로 자네야.”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외교관 후보를 고를 때의 일입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류를 넘기는 모습을 보고 비서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의원 시절 어쩌다 이 사람과 함께 버스를 탄 적이 있었네. 할머니가 버스에 타자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못 본 척하더군.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외교를 맡길 수 있겠나?”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합니다.
한 번의 실수와 한 번의 선행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며 선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선행과 배려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하소서.
어디서든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성도로 살아갑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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