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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내가 널 보는 마음이 그래!

by 안규수 2022. 2. 15.

 좋은 아침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파라과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 부패 2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합니다.

모든 과정에 돈이 들어가고, 뒷돈을 주지 않으면 진행되는 일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딥니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세계 부패 1위였는데,  1위 자리조차 돈 받고 팔아넘겼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 부패의 정점에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적지 않게 겪었던 일인데도, 오늘 하루 동안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이 땅과 이 땅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데 정말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온종일 부서 돌리기도 모자라 주변 도시 관공서 돌리기를 시키더니,

결국 거만하고 비열하며 모욕적인 언사로 많은 액수의 돈을 요구하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파라과이에 입국한 첫날엔 경찰들이 짐과 가족을 경찰서에 억류시켜놓고

가진 돈을 모두 다 털어먹고서야 풀어주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머리에 총을 들이대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당하는 인종차별과 경멸, 빈정거림, 음해성 거짓 소문 유포 등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달래고 가르치기도 하고, 언쟁하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포기하고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외국인으로 선교사로 살아야 하기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의 생채기는 사라지지 않고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웅크리고 있다가,

가끔씩 깨어나 온 가슴을 휘갈겨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하곤 합니다.

 

처음 선교지에 왔을 때 선임 선교사들이 현지인을 바라보던 그 서늘한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들만큼 시간이 지나자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눈빛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기에, 그 눈빛을 닮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지만,

오늘 같은 일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그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시간이 더해질수록 마음은 더욱 문드러져만 갑니다.

 

“선교사는 이래야 해라며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원하는 시선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고독하게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선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한 실존인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약하고 선교사답지 않은 자격 미달로 보이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에겐 답이 없음을 알기에 혼자서 기도하는 저녁 시간에 주님께 나아갑니다.

할 말도 없고 이 뭉그러진 가슴을 표현할 길이 없어 혼자 눈물만 흘립니다.

이런 일들 때문인지 요즘은 눈물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한바탕 울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시원해지기에, 언젠가부터 눈물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위로하실까 기대하는데 마음 가운데 하시는 말씀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널 보는 마음이 그래.”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그 안타까움이, 주님이 나를 보실 때마다 동일하게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죄 된 모습에 주님도 그렇게 마음이 뭉그러지신다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죄스러움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굴 탓하고 원망한단 말인가. 나는 주님 앞에 그들보다 더한 죄인인 것을.’

더 이상 울 수 없어서, 눈물이 오히려 가식적인 것 같아 자리를 일어서는데 주님은 제 마음에 한마디를 더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들을 용납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용납한단다.

아들아. 네 마음이 무너지는 모든 자리에 언제나 나도 너와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아라.”

 

다시 한참을 앉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길 원합니다, 임동수 / 규장

 

† 말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 이사야 30 26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 잠언 29 25

 

† 기도

하나님, 마음의 상채기가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있을 때면 더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보실 때 그러하신대요.

나는 주님 앞에 더한 죄인인 것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무너지는 그 모든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며 감사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적용과 결단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더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힘들어 하고 무너지는 그 자리에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위로하며 함께하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여행 중에 사막에서 길을 잃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식량과 물이 모두 떨어져 서둘러 마을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이 연약한 아들을 독려하며 사방이 모래뿐인 망망한 사막의 언덕을 한고비, 한고비 넘었습니다.

몇 개나 언덕을 넘었으나 이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에는 수많은 묘지뿐이었습니다.

무덤을 보고 망연자실한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걸 보세요. 저희처럼 길을 헤매다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잖아요.”

체념한 아들의 말에도 아버지는 무덤을 바라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스스로 무덤을 팔 수는 없단다. 여기 무덤이 있다는 건 곧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뜻이야.”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아버지의 말대로 정말 마을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순교한 사람들의 희생이 오히려 하늘의 소망을 나타내듯이

스데반처럼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사명자의 희망입니다.

날 위해 모든 고초와 고통을 감내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위한 고난에는 기뻐하며 감사하십시오. 아멘!

 

주님! 사명자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을 주님과 함께 감당하게 하소서.

고난에도 희망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