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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이승하

by 안규수 2014. 5. 22.



그대 목덜미와 손등에 남아 있는 
푸른곰팡이 같은 멍을 보았네
파스가 가리지 못한 멍은
매맞던 시간을 반추하고 있을까
멍이 대신해
그대 아팠었다고 말해주고 있네
그대 아무 말 없이
차창 밖 한강 풍경을 보고 있지만

검붉게 노을 지는 한강을
넋 놓고 보던 그대 눈망울에 
서서히 맺히는 물기를 보았네
몰래, 그러나 유심히 보니 멍의 색깔은
거무튀튀하다 아니, 푸르죽죽하다
매맞는 아내들의 멍이
저 하늘 푸르죽죽하게 멍들게 해 
비 올 듯 잔뜩 찡그리고 있나

아팠기에 밤은 해를 토해냈으리
아팠기에 바다는 해일로 솟구치기도 했으리
아팠기에 사람은 야광충처럼 빛나는
멍의 색깔을 기억하며 산다
멍든 여인아
그대 피부에 입김을 호― 호― 불어주고 싶지만 
마음마저 멍들까 봐 몰래, 그러나 유심히
훔쳐보고만 있네 저 목덜미, 손등의 
푸르른 자국

 

멍든 가족을 보는 슬픔

병약한 한 소년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백일해에 걸려 기침을 밤이나 낮이나 계속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는 백 일 동안 밤낮으로 기침한 거 생각도 안 나지? 약을 써도 써도 안 낫더니 백 일이 되니까 저절로 낫더라.”
소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후에나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거나 오징어놀이, 자치기, 구슬치기 같은 놀이를 거의 해보지 못했다. 같이 놀았다가는 저 꼬챙이 같은 녀석은 넘어지기만 해도 어디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구경하고 있으라고 하고는 자기네들끼리만 놀았다. 소년은 친구들을 따라다녔지만 같이 어울려 놀지는 못했다. 안색이 너무 창백해 폐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했다. 40대 초반에 사직서를 던진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하는 아내 옆에서 점원 노릇을 하며 40대와 50대와 60대를 보냈다. “돈도 백도 없어 출세도 못 하고……” 술만 들어가면 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 말 속에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잔뜩 배어 있었다. 20년 동안 범죄인을 다루면서 몸에 밴 습관을 가족에게도 한 치 어긋남 없이 사용했다. 취조할 때처럼 고함을 치고, 즉각적으로 반응을 안 보이면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면상에 집어던지고, 때로는 신체 가격에……. 멍든 어머니여! 멍든 누이여! 소년은 아버지의 주먹질을 말리다 말고 등교 시간이 되어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엉엉 울었다. 뺨을 맞아 한쪽 뺨만 불그레해진 얼굴로 학교에 가서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년이 짝사랑하던 같은 반 여자애가 학용품을 가게 앞에 패대기치며 고함을 지르는 소년의 아버지를 공포에 질린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뭉크의 〈절규〉 바로 그 표정이다), 소년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에 간 소년이 3년 내내 자살만 생각하며 살아간 것은, 사는 것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립도서관의 책을 빌려 읽으면서 소년은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성적은 1학년 학기 말의 전교 3등에서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기만 했다.

소년에게는 형이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누구의 도움 없이 한글을 떼고 신문에 난 한자까지도 거침없이 읽는 장남을 그의 부모는 중학교 입시 제도가 있던 당시에 시골에 둘 수 없었다. 대구에서 좋은 초등학교, 훌륭한 중학교, 명문 고등학교에 다닌 형은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2학년과 3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거푸 합격한 형은 ‘얘의 그간 성적으로 봐서 재학 중 사시 패스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공부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2차 시험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서적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죄를 다루는 법조인이 될 것인가, 인간의 삶과 꿈, 사랑과 이별, 육체와 정신, 죄악과 구원, 유한성과 영원성을 다루는 문인이 될 것인가를 두고 2년 넘게 고민하였고, 방황하였고, 부모의 뜻에 맞섰다.

소년의 아버지는 장남의 배신(?)에 광기에 사로잡혀 연일 폭력을 휘둘렀는데, 정작 뺨을 후려치고 싶은 장남은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소년은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책가방에 속옷과 양말 몇 켤레, 그리고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나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같은 책을 넣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난생처음 서보는 서울역 앞 광장,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그곳에서 소년은 비틀거렸다. 심한 빈혈증세가 몰려왔다. 독서실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보름을 못 버티고 형에게 연락한 것은 훔쳐온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형의 하숙집에서 잠이 든 날 새벽에 소년은 호령을 치며 나타난 아버지에게 멱살 잡혀 고향으로 끌려 내려간다. 기차간에서 아버지는 신문지를 던진다.

“야 이놈아. 왜 하필 써놓고 간 편지 봉투에다 ‘유서’라고 써놓았냐? 네 엄마가 울고불고 눈물로 세월로 보내고 있다.”

신문 하단에는 소년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이 소년을 찾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알려주시는 분께는 후사하겠음, 연락처는…….

소년은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부산으로 대구로 달아나기도 했고, 춘천의 고모 집에 반년 넘게 가 있기도 했다. 허랑방탕하게 10대 후반을 보내고 순전히 운이 좋아 대학생이 되었다. 본고사에 국어와 영어 과목만 있어 합격할 수 있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였다.

소년은 훗날 시인이 된 뒤 〈멍〉이라는 시를 엉엉 울면서 쓰고 나서 영혼이 정화되는 기쁨을 느낀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의 아픔과 설움을 노래하였기에.

 

  

이승하

이승하 shpoem@lycos.co.kr / 1984년 〈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 등과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등이 있음. 대한민국문학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등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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