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시 · 문정희(1947~ )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196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문정희시집』,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고』, 『지금 장미를 따라』 등이 있다.
배달하며
스무 살 때는 자전거쯤은 능숙하게 타는 여자를 만나기를 바랐지요. 왕릉과 소나무가 아름다운 경주 어딘가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파초나 키우며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어요. 서른 무렵에는 다림질을 잘하는 여자와 미래를 꾸리고 싶었지요. 통영의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달셋방에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죠.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치마 속은 우주라죠? 치마 입은 인류는 치마 아래에 남자들이 모르는 우주를 숨기고, 그 속에서 흥망의 비밀들을 기른다죠. 정말 그곳에 달과 회오리, 신, 갯벌, 조개들의 세계가 있을까요? 그 치마 아래 우주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기쁨의 총량은 반 이하로 줄었겠죠. “이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 천상에서 이루어지며/말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는 성취되었다./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읊조려 봅니다. 이룰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성취되는 천국이란 바로 여성들이 남자들 몰래 그 치마 아래에 감춘 우주가 아닐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