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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잠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해도

by 안규수 2023. 4. 19.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아이가 어른에게 예의가 있어야 하지만 부모 자녀 관계에서는 예의 이전에 친밀함이 있습니다. 
그 친밀함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요구 또한 당당히 말하곤 합니다. 
이처럼 주께서 우리도 자녀 삼아주신 그 친밀함으로 매일매일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것이야 말로 진정한 특권이니까요~

이신칭의의 결과로 우리가 누리는 특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롬 5:2

여기 나오는 ‘들어감’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사고겐’인데, 
원래 이 단어는 ‘~에 다다르다, 도착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바울은 이 단어를 가지고 무엇을 설명하는가? 
이신칭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나아갈’이 ‘프로사고겐’이다.

이 단어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게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해주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특권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우리 교회 부목사들 중에는 목회자 자녀가 많다. 
한번은 목사님 아들 출신인 부목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자기 아빠가 담임목사님이니까 수시로 담임목사 사무실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고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나 간식을 꺼내 먹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자기가 부목사가 되어 사역을 하다 보니, 
담임목사 방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기는커녕 아무것도 만질 수 없더라는 것이다. 
가볍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로 강조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나는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다. 
아주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내 방에 불쑥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확인부터 한다. 
만약에 내가 묵상 중이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그 부목사의 이야기를 듣다가 청소년 시절의 나의 두 딸과 아들이 생각났다. 
우리 집 아이들은 담임목사 방에 제멋대로 들어오고 
소파에 드러눕기도 하고 뭘 만지다가 고장이 나도 놀라지도 않는다. 
“고장 났네?” 하고는 그냥 가버린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나와 아무리 가까워도 내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와서 제 것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자녀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신칭의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무시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부교역자가 담임목사 대하듯 하나님을 대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 특권을 누리는 데 있어서도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특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가? 
왜 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빠진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보자.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 16:23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란 것이다. 
그다음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것만큼 잘 요약한 게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언가 엄청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길 원하신다.

우리의 최대 과제는 주님 안에서 행복한 것이다. 
주님 안에서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니 자꾸 주님 밖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 밖에서의 행복은 탈선이다. 
선을 이탈한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한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의 기쁨을 빼앗으려 해도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것, 
이것이 영적 전쟁 아닌가?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는 주님의 소원이 우리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오늘 새롭게 살수있는 이유 -  이찬수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헝가리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는 ‘스트레스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그 공로로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노벨생리학상 후보에 17번이나 올랐고 
하버드 대학교 의대와 존스홉킨스 대학교 등을 거치며 내분비학의 대가로 인정받았습니다.
한스 셀리에 교수는 노년에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셀리에 교수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였습니다.
셀리에 교수는 언제나 단 한마디로 대답했습니다.
“감사하십시오.”

셀리에 교수가 밝혀낸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할 때 스트레스가 찾아옵니다. 
변화에 긍정적으로 적응한다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로 인한 불행과 질병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감사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잠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해도, 
주님이 모든 삶을 책임지고 계시기에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삶이 위태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주님이심을 의심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아멘!

주님, 모든 일에 주님께 감사하는 고백을 드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통해서도 주님께 감사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