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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어려움에 처할 때 더욱 나다워지는 것 같아. 일도 더 잘해

by 안규수 2023. 4. 2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어려움이 주는 깨달음

"있잖아. 방금 깨달았어. 나는 어려움이 있는 상태가 좋아. 
어려움에 처할 때 더욱 나다워지는 것 같아. 일도 더 잘해." 
이 말은 제게 너무나 뜻밖이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이 말을 했던 장소도 정확히 기억납니다. 
친구와 저는 뉴욕시 57번가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던 길이었습니다. 
어느 여름밤이었지요. 
그가 만났던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렸고, 
어려움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그의 말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지냈습니다. 
그 작은 깨달음의 순간에 제 친구가 보여준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해지는 사람은 드뭅니다만,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위기상황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게 하는 자극제가 됩니다. 
어려움은 우리가 에너지를 모을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 채 지루한 상태로 멀뚱멀뚱 서있던 우리에게 
뭔가 사건이 일어나면(전쟁, 사고, 죽음, 거절, 위험) 모호함이 전부 사라지고 지루함도 씻은 듯이 없어집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고 흥분상태가 됩니다. 살아 있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질병, 상실, 실망, 실패, 죄책감 등의 어려움이 닥칠 때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흔히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치유하시고 도우시고 건져 내시는 행위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치유받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용서받고 나면 무엇을 합니까?

여러분의 담임목사인 제 경우를 들어서 말해 보겠습니다. 
저는 아픈 사람이 생길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교인 가정에서 누군가가 사망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어떤 이가 죄책감을 품고 찾아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부분은 보통 잘 아프거나 슬퍼하거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은 보통 썩 잘 지냅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정시에 출근하고, 주택담보대출 상환금을 내고,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이어 가고, 하루 세끼 괜찮은 식사를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다음 위기상황을 대비해 주위에서 기다릴까요? 
여러분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제가 주일 설교시간에 도덕적 원리를 정말 잘 가르친다면, 
주중에 저는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런 때에도 뭔가 할 일이 있을까요?

이와 같은 점잖고 편안한 삶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전히 일이 계속 이어지게 만들려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싸움을 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촉발합니다. 
그러면 더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겁니다. 
물론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들은 무의미한 일상보다 고통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때의 대영제국에 대한 연구서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치의 런던 폭격 기간에 거의 모든 시민의 심리적 신경증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정적 동요를 겪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상황이었고 그에 대해 뭔가 대처를 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사지가 마비되어 침대에서 떠날 수 없었던 한 여성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실화로 보였습니다. 
그 여성은 부유했고 여러 내과의사와 정신과의사를 불러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담 내과의사와 정신과의사에게 그녀의 상태는 큰 수수께끼였습니다. 
어느날 두 사람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녀의 치료를 위해 공모를 했습니다. 
그들은 한 친구를 시켜 안전한 곳에 불을 내게 하고 집전체에 연기가 자욱해졌을 때 "불이야! 불이야!" 소리치게 했습니다. 
당시 그 여성과 함께 방에 있었던 두 사람은 무력한 상태로 침대 위에 있던 그녀를 내버려 두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는 느낌으로 달려 나간 뒤,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몇 분 후 그녀는 뒤따라 달려 나왔습니다.

끔찍한 치료법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이 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건강한 회개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옥불을 경고하며 소리칩니다. 
물론 그것은 때때로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매주 이 강단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죽을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 
심판이 전혀 뜻밖의 시간에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지만, 
인생에는 위기 대처 말고도 많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입니다. 
절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최상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유진 피터슨의 잘 산다는 것 -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눅 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소더비와 함께 세계 최고의 명품 경매를 담당하는 ‘크리스티’에 
초현실주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이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 중에서도 역대 최고가에 낙찰됐고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며 미술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작품이 사실은 위작이었습니다.
위작을 그린 독일의 화가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어떤 그림이든 똑같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크게 재미를 못 보고 쉽게 큰돈을 벌기 위해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벨트라키의 위작은 전문가들도 분별이 불가능했으며 원작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미술 역사 어디에도 남지 않았고 
아까운 재능을 허비한 벨트라키는 교도소에 다녀와서도 여전히 위작을 그리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슷하다 하더라도 따라 그린 그림은 결국 탄로 나기 마련입니다.
제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섞여 비슷하게 흉내만 내는 신앙을 가진 성도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진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진정으로 구원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점검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