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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이 포괄적 기쁨은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행동이 되게 한다

by 안규수 2023. 7. 1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복음은 절대적으로 ‘기쁜 것’이다.
복음은 슬픔을 기쁨으로, 염려를 평강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기쁨이지 슬픔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감사지 염려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평강이지 두려움이 아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수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 마음은 두려움과 염려와 낙심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이 기쁨을 누리기 원하신다. 
아니, 이 기쁨을 누리라고 명령하신다! 그것도 ‘항상’ 말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복음은 우리 마음, 좀 더 정확히는 감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감정 자체가 우리의 신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한 믿음과 감정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착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즉 어떤 감정으로 하느냐가 그 의미를 결정하고,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할 때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기쁜 마음으로 하는가 아니면 불편한 마음으로 하는가, 
이것이 우리 행동의 영적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감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한다. 
기쁨과 감사, 평안과 소망이 우리 내면에 항상 가득하게 하라는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쁨’은 기쁨만이 아니라 평안, 소망, 감사와 같은 영적인 감정들을 포괄적으로 대표하는 단어다. 
이 포괄적 기쁨은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행동이 되게 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항상’이다. 데살로니가전서 역시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항상을 첨언한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을 누리기 원하시는데, 항상 누리기를 원하신다. 
살다보면 힘들 때가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건강에 이상이 오기도 한다. 
또 우리가 지나온 것처럼 긴 팬데믹을 통해 집단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쁨의 감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우울과 낙심, 원망과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런데 성경은 그럴 때조차 기쁨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업이 망해도 기뻐하고, 병에 걸려도 기뻐하고, 오해를 받아도 기뻐하고, 
핍박을 당해도 기뻐하고,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로 그 ‘기쁨’에 관한 책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했다. 
곧 끝날 줄 알았던 구금 기간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었다. 
기쁨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처음에 옥에 갇혔을 때는 그래도 믿음이 살아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곧 나가게 해주실 거야!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빌립보감옥에서도 그랬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시점에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 이게 뭐지? 하나님이 왜 이러시지? 나를 잊어버리셨나?’
시간이 흐르며 이 헷갈림은 분노로 바뀐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어! 이건 아니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자기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내가 잘 나갈 때는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따르더니, 
이제 옥에 갇히니까, 바로 손절이야?’

분노가 올라온다. 
하나님을 비롯해 사람들, 환경, 별별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원망스럽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이제 분노는 낙심이 된다. 
화낼 에너지조차 없다. 마음은 잿빛 우울함으로 가득하고 삶은 무기력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것이 고통이 장기간 계속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울의 상황이 정확히 그랬다. 
우울하고 낙심되고 무기력해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편지를 전한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나는 이것이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은 상황과 상관이 없는 기쁨이다. 
낙심과 무기력을 파쇄하는 기쁨이며,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기쁨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상황을 모르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라 하셨다.

- 케노시스:자기비움, 고성준

† 말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시편 27장 1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 기도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제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기뻐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수 1: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스웨덴의 한 청년이 약관의 나이에 성공의 꿈을 안고 혈혈단신으로 미국 이민을 떠났습니다. 
부푼 꿈을 품고 있었지만 경제 상황이 열악했던 당시 미국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가진 돈을 탕진하고 노숙을 전전하던 청년은 미국 서부에 일자리가 많다는 풍문만 믿고 
몰래 기차에 숨어 탔으나 도중에 발견되어 흠씬 두들겨 맞고 어딘지도 모르는 강가에 버려졌습니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더욱 큰 실의에 빠진 청년은 
차라리 이대로 강에 빠져 삶을 마감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강물에 몸을 담그는 도중 스웨덴에서 종종 읽었던 한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지금까지 한탄만했지 바울처럼 정말로 노력해본 적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청년은 
다시 힘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도전했습니다.
정유회사의 중직을 거쳐 미국 몬타나(Montana) 주의 주지사가 된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던 휴고 애런슨(J. Hugo Aronson)의 이야기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다시 한번 도전하며, 다시 한번 결단합시다. 아멘!!

주님, 힘들고 지친 순간에도 주님이 함께하시며, 능력을 주심을 믿고 알게 하소서.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