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봄이 오면 생명들은 저마다 자기 할 일로 분주하다.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새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눈에 띄게 활발하다. 종달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와 직박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새들의 날갯짓이 제법 힘차다. 이렇듯 봄날 햇볕을 받는 모든 생명은 약동한다.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 아무 병 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서정주 시인의 「봄」이다. 이 시는 봄이면 자주 읊조린다. 상실과 쇠락의 계절을 견딘 사람은 회복과 도약의 새 계절을 맞는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도 빨라진다. 이런 봄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
꿈의 섬 제주를 향해 길을 나선다. 제주 숙소 창문 밖 뜰 동백꽃 나무가 밤새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낙화의 꽃임에도 자기 때가 아니면 꺾이고 베일지언정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버티니 꽃샘추위 몽니도 저 동백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봄의 왈츠가 경쾌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섬, 많은 길 가운데 올레길 1.2 코스를 좋아한다. 종달리 해변,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라고 노래한 이생진 시인의 시비, 일출봉을 의연히 바라볼 수 있는 광치기 해변과 섭지코지의 매혹에 홀리어 그런다. 광치기 해변에 칼바람이 분다. 성산일출봉이 벌거벗은 채 모진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한마디 투정도 없이 묵묵히 견딘다. 정승윤 작가의 산문집 「나 홀로 간다」에 등장하는 말(馬)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을까. 궁금증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세찬 바람에 떠밀려 그냥 걷는다. 언덕 저편 바닷가 둔덕 위 억새가 모든 씨앗을 다 날리고 버석거리는 몸만 남아 바람에 나부낀다. 한여름 푸른 시절을 보내고 꽃을 피워 씨앗도 다 날렸으니 할 일을 다 한 억새. 이제 봄이 오니 새싹을 위해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한다. 문득 죽음 앞에서 호상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작은 풀꽃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칼바람도 넉넉하게 이겨내고 돌담 옆에서 활짝 피었다. 땅속에 몸을 숨기지 않고 땅에 납작 엎드릴 줄 아는 풀꽃. 홀로 걷는 날 보고 방긋 웃는다.
나는 바닷가 돌담길을 걷는다. 그 숭숭 뚫린 구멍으로 불어오는 갯내가 묻은 바닷바람을 패 깊숙이 빨아드리면 체내에 쌓여 있는 독소가 한꺼번에 빨려 나간 느낌이 든다. 새 한 마리가 돌담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돌담은 엉성하게 보이지만, 그 틈새 바람구멍은 태풍에도 넉넉하게 돌담을 지켜내는 힘이 있다. 돌담은 화산성 바람이 함께 만든 대표적인 상징적 경관이다. 돌담은 자연미가 살아 있고, 부드러운 곡선에 정감이 간다.
한라산백록담 남벽을 오르기 위해 신들이 영역인 영실에 들어섰다. 여긴 내가 제주에 올 때마다 들리는 필수 코스다. 금강소나무 숲은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고 반긴다. 붉은빛이 감도는 금강소나무 향긋한 솔향이 싱그럽다. 병풍바위에 오르자 깎아지른 절벽에 오백나한 기암괴석이 날 반긴다. 산허리를 감고 도는 선홍빛 햇살과 구름이 한데 어울려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고개를 넘는다.
구상나무 숲은 살아 있는 나무보다 죽은 나무가 더 많다. 구상나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생물 종이다. 그 나무가 모진 바람에 허리가 꺾이고 뿌리가 뽑혀 백골이 된 채 넘어져 있다. 생태 한계선인 한라산 1,500고지 일대에 자생하는 아름다운 침엽수 숲이 죽어가고 있다고. 원인은 기후 온난화 때문이란다.
내가 좋아하는 윗세오름이다. 아련한 향내가 배어 있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적신다. 백록담 남벽이 우뚝 솟아 찬연히 위용을 과시하고 있어 그 풍경은 또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보인다. 이곳 풍경을 「오름 나그네」의 저자 김종철은 “진달래꽃 진분홍 바다 넘실거림에 묻혀 있으면 그만 미쳐버릴 것 같다”라고 노래했다. 그는 죽어서도 이곳에 묻혀 고이 잠들고 있다.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을 걷는 동안 새들의 노랫소리, 바람이 여울져 휘감는 소리, 넓은 초원에는 고즈넉함이 있다. 오늘 지저귀는 새소리가 유난히 낭랑하고 구슬프다. 산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이렇듯 오묘하다. 흙과 물 햇빛과 바람이 조화롭게 어울려 여기 깃들어 사는 뭇 생명이 다복하게 살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품속에서는 풀 한 포기도 충만하다.
남벽 정상이다. 깎아지른 듯 암벽의 웅장한 분화구가 내 앞에 버티고 있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느긋하고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풍경을 본다는 건 무엇일까. 풍경은 그 물질적 외관의 아름다움보다는 드물게 만나는 정적 사색의 순간이 아닐까. 그 풍경 넘어 수평선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바라본 건 그런 조화와 통일이 빚은 아우라이고, 풍경에 스민 깊은 고요함의 아름다움이다.
내려오는 길 병풍바위 쉼터에 오래 앉아 있었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저 구름처럼 나의 인생도 흘러가고 있다. 삶은 어차피 홀로 걷는 길이다. 혹은 지름길도 걸었고, 멀리 돌아서 에움길도 걸었다. 걸으면서 꽃구경도 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도 듣고, 길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걷고 걷다 보니 내 몸이 바로 움직이는 붓이요 펜이 아닌가.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 나는 행복하다. 사실 행복이란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신선한 공기, 햇빛, 물, 건강, 약간의 책, 음악, 고요! 행복을 위한 목록에 적힌 것들은 나의 주위에 흔한 것들이다.
이런 날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가 제격이다. 이 곡은 우아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봄의 생기와 활기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다. 걷기는 빛으로 가득 찬 누리 속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몸을 이끌고 나아가는 일이고 전진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에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