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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사랑의 발원지는 하나님

by 안규수 2014. 9. 1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오늘 새벽도 눈을 뜨니 창가로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포근하게 맞아 주더군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조현삼 목사님의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쉽다>라는 제목이 칼럼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0^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달리 다른 대책이나 대안이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를 사랑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우리끼리 통하는 말로, 그래야 천국을 경험합니다. 

다른 길을 찾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입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쉽게 할 수 있을까’를 공부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와 관련된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은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주기만 하고 받는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어느 날 탈진합니다. 

그러면 폭발합니다. 

아내들 중에, 어머니들 중에 이런 ‘사고’를 내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내나 어머니는 받은 사랑 없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자로 알면 곤란합니다. 

아내와 어머니도 사랑받아야 합니다. 

사랑의 발원지는 하나님입니다. 

자신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절망할 것이 아니라 

사랑 없는 그 마음을 들고 하나님께로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를 통해 받은 그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갑니다. 


성경은 사랑을 성령의 열매이자 은사라고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리스도인 된 우리는 어차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쉽게 해야지요. 은사를 받으면 사랑이 쉽습니다. 

우리 주변에 각양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식을 잘 만드는 은사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싱거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냥 하는데요.” 

그냥 한다고 하는데 은사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냥 합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 삼일 금식과 철야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합니다. 

그런데 곁에서 보기에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사랑이 쉬워집니다. 

사랑의 크기는 받은 양에 따라 그때그때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의 분량이 다른 것은 받은 사랑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크기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은 

어제 받은 사랑과 오늘 받은 사랑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이니 그렇지” 하고 이해합니다. 

같은 일인데도, 어떤 때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 하고 짜증을 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사랑의 크기 차이입니다.


사랑이 될 때 해버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사랑을 내일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용서가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던 그 일이 오늘은 용서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지금 사랑해버리는 겁니다. 

도무지 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줄 수 있을 것 같다면 지금 사랑해버리는 겁니다. 

내일은 못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이 지나면 영영 못할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공자가 수제자인 자공과 자로를 데리고 여행을 하다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한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의 주인이던 노인은 흔쾌히 방을 하나 빌려주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노인은 부엌에 들어가 죽을 끓여 공자 일행을 대접했는데, 

낡은 냄비에 좁쌀로만 끓인 볼품없는 죽이 이가 다 빠진 그릇에 담겨 나왔습니다. 

게다가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노인의 손과 옷을 본 자공과 자로는 선뜻 죽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접시를 들고 노인이 준 죽을 후룩 소리를 내가며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입맛이 매우 까다로웠던 공자였기에 당연히 죽을 먹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날 오두막을 떠나며 공자에게 죽을 먹은 이유를 묻자 공자는 말했습니다.

“더러운 옷과 낡은 그릇, 좁쌀은 잘도 보면서 없는 살림에 

우리 셋을 대접한 노인의 정성과 친절은 보이지 않는가 보구나?”

없는 대접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정성과 친절입니다.


예수님도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하나님이 크게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시간, 선행, 물질, 친절을 하나님(이웃)께 귀한 정성으로 항상 드리십시오. 


주님!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늘 정성을 다하게 하소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와 찬양, 헌금을 드리십시오. <김장환 목사,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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