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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피차 존경하라

by 안규수 2015. 7. 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호치민으로 내려와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조현삼 목사님의 <좋아하면 힘을 얻고 싫어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라는 칼럼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자매, 남매, 부자, 부녀, 부부 관계가 서로 좋아야 충전됩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가정을 충전소로 주셨다는 것과 피차 복종하고 존경하면 충전된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피차 복종하고 존경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함께 나눕니다.

 

복종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복종은 그렇게 무겁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복종은 듣는 것입니다. 즉, 들어주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하라는 것은 피차 들으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이렇게 하고 있다면, 피차 복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는 것은 복종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면서 ‘성경에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써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여선 안 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각론 앞에 있는 ‘피차 복종하라’는 총론을 놓치면 이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피차 복종할 때 피차 충전을 받습니다.

자신의 말을 마음을 담아 들어주는 남편에게 아내는 충전됩니다.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아내에게 남편은 충전됩니다.

 

성경은 자녀들을 향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공경 안에 들어 있는 의미 중에 하나가 ‘존경’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부모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공경은 자녀가 부모를 향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 해야 합니다.

우리는 피차 공경해야 합니다.

 

‘존경하다’는 말의 또래 버전은 ‘좋아하다’입니다.

어른이나 윗사람을 향해서 존경한다고 하는 그 상태를 또래 간에는 좋아한다고 합니다.

피차 존경하라는 말은 피차 좋아하라는 말입니다.

피차 존경하면(좋아하면), 충전을 받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힘을 충전시켜주고,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의 힘을 소진시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을 받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직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상사나 동료에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면 그에게서 힘을 받고, 사람을 싫어하면 그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싫어하는 사람 수를 줄여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없애야 스트레스가 없어집니다.

좋아하는 사람 수를 늘리면 힘이 넘칩니다.

필연적 관계인 가족 간에 피차 더 좋아해야 합니다.

자매간에, 남매간에, 부자간에, 부녀간에, 부부간에 피차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면 충전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

 


신학자 코렌트리 팻모어에게 한 학생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교수님, 지금 세상에서의 가치관이나 성품 중에 하늘나라에서도 통용되는 것이 있을까요?”

“글쎄, 솔직히 잘은 모르겠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예의가 하늘나라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네. ”

전혀 의외의 대답이 나와 놀란 학생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네.

천국에서는 희망을 품을 일도 없을 거라네.

우리가 더 이상 바랄 게 없기 때문이지.

용기는 어떨까? 아마도 용기를 발휘할 위험한 상황이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네.

게다가 배고프고 목마를 일도 없으니 동정심이나 자비심도 있을 수가 없고 말이야.

다만 다른 영혼을 맞이하고 인사하는 일만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예의가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네.

물론 하늘나라에 가봐야만 알 수 있겠지만. ”

 


철학자 칸트는 예의는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역시 연장자와 마땅히 존경 받을 사람에 대한 예의를 매우 강조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인륜적으로 나 처세방법으로나 또는 성경적으로나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 맞는 예의와 겸손을 차리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인정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예의는 마음을 다해 지키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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