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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어리석은 사람들

by 안규수 2015. 8. 19.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피스 이전으로 인하여 어제 오후 내내 짐 정리를 하는 데,

버리지 못하고 몇해 동안 이고 끼고 산 자료와 물건들이 참 많더라구요.

90% 이상을 버리면서 얼마나 홀가분하던지요.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0^ 


믿음이 성숙해 질수록 삶은 순수해지고 단순해지겠지요? ^0^  


세례 요한은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으라' 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정직하게 사업을 하라' 고 하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예를 들었지요. (눅 3:8~14)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마크 배터슨의 <올인>이라는 책이 이루를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믿음은 어리석어 보이는 자발성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방주를 만드는 노아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90세의 나이에 임부복을 구입하는 사라가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바로에게 노예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모세 역시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여리고 성 둘레를 도는 이스라엘 군대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에게 달려드는 다윗은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별 하나를 따라 먼 곳까지 온 동방박사들도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한밤중에 배에서 갈릴리 바다로 뛰어내린 베드로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그리고 반 벌거숭이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어리석게 보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 결과가 증명한다.

그렇지 않은가? 

노아는 홍수가 있을 동안 방주에 타고 있었다. 

사라는 마침내 이삭을 낳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다. 

여리고 성은 완전히 무너져 잿더미가 되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찔렀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를 발견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만약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자발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 한 번도 방주를 만든 적이 없고, 

거인을 때려눕힌 적이 없고, 

물 위를 걸어본 적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자발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의 길을 걷다보면 양다리 걸치는 작전을 중단해야 할 시점이 온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안전하게 살기를 중단해야 할 시점, 늘 해오던 대로 하기를 중단해야 할 시점이 온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이는 일들을 해야 한다.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나무를 심거나 나무를 베고 톱질해서 널빤지를 만들어야 한다! 


서클 메이커 ; 기도의 원을 그리는 사람》이 출간되었을 때 

수천 명의 독자들이 편지와 메일로 기도에 관한 간증을 보내주었다. 

모든 간증들이 감동적이었지만, 

그중에서 50년 전 미시시피 삼각주 지역을 엄습했던 혹독한 가뭄에 대해 언급한 간증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지독한 가뭄으로 추수가 어렵게 되자 그 지역의 어느 시골 교회가 비상기도회를 소집했다. 

수십 명의 농부들이 기도하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 

모두가 평상시의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그중에 단 한 사람이 우비를 입고 나타났다. 

다른 농부들은 그 사람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노아 시대 사람들이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믿음이 아닐까? 

비를 내려달라는 당신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을 진심으로 믿을 때 당신이 입어야 할 옷이 바로 우비가 아닌가? 

하나님의 이적을 믿고 그에 맞게 우비를 입는 것이 과연 괴상한 행동인가? 

나는 그 농부의 어린아이 같은 믿음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농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갈 때 비를 맞고 싶지 않네!”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 

그 농부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농부 한 사람의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 이적을 베풀기로 결정하신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응답해주신 것처럼 행동한다. 

실제로 응답받기까지 120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그대로 행동해야 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고린도전서 1장 18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히브리서 11장 1절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요한일서 3장 22절


주님, 세상에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주의 말씀을 의지하며 따르며 살길 원합니다. 

제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사의 매우 중요한 인물인 요한 웨슬레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글을 보면“영국교회사에서 
존 웨슬리라는 지성적이고 활동적인 신학자가 나온 것은 부모의 영향이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특히 어머니 수잔나는 19남매를 키우면서도 철저히 예의범절과 기초학문을 교육시킨 대단한 분이었는데, 
목회자였던 웨슬레의 아버지도 놀랄 정도로 인내와 친절의 대가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여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말썽을 피우는 여러 아이들에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같은 소리로 타이를 수가 있는 거요? 벌써 한 20번은 반복한 것 같소만... ” 

수잔나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19번째에서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면, 18번의 타이름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어요?” 

나의 잘못에도 하나님이 바로 벌을 주시지 않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내가 죄를 스스로 깨달아 바로 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내를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주님, 주님의 인내하심을 통한 사랑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하소서. 
인내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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