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타고 있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앞 다투어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크리킨디'라는 이름의 벌새만은 부리에 물을 한 방울씩 담아 와서는 왔다갔다 산불 위에 떨어뜨리길 반복했습니다.
동물들이 그 광경을 보고
"그런 일을 해서 도대체 뭐가 된다는 거야?"
라고 말하며 비웃었습니다.
크리킨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이것은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십 사년 전, 나는 벌새 크리킨디 같은 일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남편의 배는 하루하루 복수로 차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민간요법이며 자연요법이 쓰인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주로 서점 안에서 비스듬히 서서 힘들게 책을 섭렵했습니다. 그 많은 책들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에선가 배에 헝겊을 대고 된장을 바르면 복수가 더디게 찬다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배꼽에 명함 크기의 두꺼운 종이를 댔습니다. 배꼽에는 된장의 짠물이 들어가면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순서는 무명 헝겊을 배 전체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헝겊 위에 된장을 5밀리미터 두께로 펴 바르고 그 위에는 비닐을 알맞게 잘라붙이고, 마지막으로 더운 찜질 팩을 올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두 시간씩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찜질하면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의 생명이 된장 찜질로 조금이라도 연장되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를 위해 그런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나에겐 참 위안이 되었습니다. 된장을 붙여도 사흘에 한 번은 주사 바늘로 복수를 꼭 빼내야 했습니다. 어떻든 남편은 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된장을 배에 붙인 채 떠났습니다.
그때 의사나 가족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런 일을 해서 도대체 뭐가 된다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크리킨디와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벌새 크리킨디 이야기가 새삼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옛날 남편의 배에 된장을 붙이던 나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때마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에세이문학>, 통권 119호, 2012년 가을호
[출처] 박경주 수필 / 벌새 크리킨디 이야기 / <에세이문학>,통권119호|작성자 참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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