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
김 경 수
나는 아들이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심화학습에 학원수강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자정 무렵이니 주옥 같은 고전문학을 언제 읽겠는가.
헌데 요즘 새벽녘까지 고전古典을 뒤적이고 있어
웬 일인가 했더니, 학교 대표로 선발돼
고교 백일장 경시대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틈틈이 해두지’하고는 잊고 지냈는데,
방학을 며칠 앞두고 백일장에서
도道 교육감상을 받았다며,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일찍 들어와 축하해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따라 약속이 있어 늦게 들어 왔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표창장을 읽어보고,
늦은 시간까지 책과 시름하고 있는 아들놈
얼굴 한 번 바라보고 별 말없이 내 서재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 있는데,
뒤 따라 들어온 아내가
“칭찬 좀 해주지 어찌 그리 무뚝뚝해요.”
하며 서운해한다. 낸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아들이 쓴 시詩가
<아버지>였기에 그날밤 늦도록 잠을 설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선친도 무던히 표정과 말씀이 없으신
조금은 무서운 분이셨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나란히 마주해 다정히
이야기를 나눈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아들에게 말과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다.
이것도 집안 내력이라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운명하셔서
당신과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유년시절 읍내에 서커스단이 들어오면
자전거 안장 위로 올려 구경시켜 주시던 아버지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들녘으로 따라 갔다가
빈사이다 병에 메뚜기를 가득 잡아주시던
아버지 모습이 한 폭 그림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내가 표창장을 받아와도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던 아버지,
동네 아이들과 서리하다 늦은 밤에야 들어올 때에도,
사랑방에서 헛기침 한 번으로 꾸중하시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과묵하신 분이었다.
자정 무렵에야 들어온 아들이,
<아버지>라는 시詩가 교내 현관에 걸렸다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 또한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혹 자만할까 싶어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
삼복더위가 시작되어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바람이 서늘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마루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아 오더라
저별은 뉘 별이며 내 별은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병기 詩 '별'을 되뇌어 본다.
오늘따라 밤하늘 별빛이 유난히 반짝인다.
나의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들은 여름성경학교에서 실시하는 수련회를 떠났다.
아들이 돌아오면 전해주려 편지를 써야겠다.
무더위에 수고했다고. (샘터 1999.8)
아버지
김용욱(전주 신흥고 2년)
우리 집엔
자정이 다 되어야 들어오는
머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무척 닮은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펴주고는
지친 몸을 방바닥에 부립니다.
아침,
그는 덜 깬 눈을 부비며
우리 형제를
학교라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허름한 지갑 속에서
몇 장 안 되는 구겨진 종이돈을
살점처럼 떼어 줍니다.
그리곤
그의 일터로 가서
개미처럼 밥알을 모으며 땀을 흘립니다.
그러기를 20 여년...
지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힘부칠 때도 되었는데
오늘도 그는
작은 체구에 축 쳐진 어깰 툭툭 털고는
우리에게 주름진 웃음을 보이지만
머슴생활
너무 힘겹고 서러울 때
우리에게
이따금씩 들키는 눈물 방울
그 속에
파들파들 별처럼 떨고 있는
남은 가족의 눈방울들
그 머슴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
[전라북도 교육감 수상작]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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