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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의 유령/안희연

by 안규수 2016. 2. 9.

면벽의 유령/안희연



여름은 폐허를 번복하는 일에 골몰하였다


며칠째 잘 먹지도 않고
먼 산만 바라보는 늙은 개를 바라보다가


이젠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
늙은 개를 품에 안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책에서 본 적 있어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기도*
빛이 출렁이는 집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은 길을 주었다
길 끝에는 빛으로 가득한 집이 있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눈부신 집이었다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가 입구에 세워진 푯말을 보았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리십시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늙은 개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버려져야 했다

기껏해야 안팎이 뒤집힌 잠일 뿐이야
저 잠도 칼로 둘러싸여 있어
돌부리를 걷어차면서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도 길을 주었다
우리는 벽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주 잠깐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렸다
너를 잃어야 하는 천국이라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크파란>창간호, 2015



천국에도 슬픔이 많다면


작년 가을 이후, 내 영혼을 깊이 할퀴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 문장이 있다. 보르헤스 인터뷰집인 <보르헤스의 말>(마음산책, 2015)에 수록된 “천국에는 슬픔이 많다”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보르헤스는 그 문장을 영국의 한 성직자가 쓴 책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리 큰 비중을 두고 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대화는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나의 시선과 정신은 얼어붙었다.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천국이라면 슬픔이 없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일 테고 혹여나 있더라도 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 인간이 오만해지지 않을 정도라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니냐는 비난까지도 얼마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는 믿음, 그곳은 지금 여기와 다를 거라는 믿음 없이는 삶을 지속해나가기 힘들었다. 세상의 하고많은 것들 중에 하필 ‘시’를 선택한 이유, 이 무용하고 무가치해 보이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믿음이 허망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허깨비에 불과하더라도, 계속해나가다 보면 조금은 덜어지고 옅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으로 광장에 나갔고 한 권의 시집을 묶었다. 한 절망이 떠나가고 더 커다란 절망이 맹렬히 들이닥치는 걸 보면서도 뒤돌아서서 곧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그간의 믿음은 보기 좋게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천국에도 슬픔이 많다면 굳이 그곳에 가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어쩌면 그토록 슬픔이 많은 이곳이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 천국일지도 모르니까. ‘생은 다른 곳에’ 있다던 밀란 쿤데라도,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하고 외쳤던 보들레르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천국에는 슬픔이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단한 만큼 부서지기 쉬운 것이 믿음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저토록 간절한 문장을 써야 했던 것이었는지도.

그러니까 멀리 떠났던 내가 도착한 곳은 제자리였던 셈이다. ‘지금-여기’에서의 삶만이 유일하다는 사실, 다른 세상은 없다는 사실, 그러니까 주어진 삶 안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뭔가 크게 뒤집힌 것 같지만 실은 매한가지다. 막연하게 허공만 겨누고 있던 총구를 정확하게 다시 조준했을 뿐.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단순하고 순진했던 믿음을 깨부수고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믿음을 받아안았다. 달라질 게 없는 이곳에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이 시를 쓰고 삼시 세끼 밥을 먹는다. 이 삶의 성공 여부 역시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허무하고 무기력할까 봐 두렵다. 그렇지만 이런 건 어떨까. 믿음이 거세된 믿음, 무가치한 것을 쌓아 만든 견고한 성벽.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헬조선은 헬조선이고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할 거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학과 포기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희망이나 절망만큼 쉬운 일은 없다.

안희연
안희연

 

우리는 그 사이 어디쯤, 매일매일의 탄생과 죽음 가운데 살아 있다. 이보다 더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까. 이곳은 나날이 슬픔이 차오르는 천국이고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그 엄청난 사실과 싸우며, 그 엄청난 사실로 인해.



안희연 1986생.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으로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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