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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하룻밤에 강물을 아홉 번 건너며 (一夜九渡河記)/연암 박지원

by 안규수 2016. 7. 2.


 

  물이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바위와 부딪치며 사납게 싸우면서, 놀란 파도, 성난 물결, 분이 난 큰 물결, 화가 난 물보라, 구슬픈 여울, 흐느끼는 소용돌이가 달아나며 부딪치고 곤두박질치면서 으르렁 소리치며 울부짖고 포효하며, 언제나 만리장성을 꺾어서 무너뜨릴 기세이다.

  만대의 전차, 만 마리의 전투 기병대, 만 틀의 전투 대포, 만 개의 전투 북을 가지고도 무너뜨리고 깔아서 뭉갤 것 같은 저 야단스러운 소리를 충분히 형용할 수 없으리라.

   모래밭 위에 큰 바윗돌은 우뚝하게 외따로 섰고, 강 둔덕의 버드나무 숲은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하여 마치 물귀신과 강 도깨비가 앞을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리는 듯, 교룡(蛟龍)과 이무기가 양쪽에서 서로 움켜쥐고 낚아채려 날뛰는 듯하다. 혹자는 말하리라. 여기는 옛날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이렇듯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고. 그러나 이는 그런 뜻이 아니다. 무릇 강물 소리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연암협(燕巖峽) 산중에는 집 앞에 큰 개울이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마침내는 아주 귀에 탈이 생길 지경이었다. 언젠가 문을 닫고 누어서 소리의 종류를 다름 사물에 비유하면서 들어 보았다.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퉁소소리가 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짜개지고 절벽이 무너진 것 같은 소리, 이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뽐내고 건방진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찻물이 화력의 약하고 강함에 따라서 각기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아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거문고가 가락에 맞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똥땅거리는 물소리, 이는 애잔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창문에 문풍지가 떠는 듯 파르르 하는 물소리, 이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모두 그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소리라고 이미 설정해 놓고서 귀가 소리를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한밤중에 한 가닥 강물을 이리저리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물은 장성 밖의 변방에서 흘러 들어와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 황화진천(黃花鎭川)등 여러 가닥의 강물이 한군데 모여 밀운성 아래를 지나서 백하가 되었다. 나는 어제 배를 타고 백하를 건넜는데, 그곳이 바로 이 물의 하류였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서지 못했을 때는 바로 한여름이라, 뙤약볕 아래 길을 가는데 갑자기 큰 강이 앞을 가로 막았다. 붉은 흙탕물이 산더미처럼 밀려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천리 밖에 폭우가 내린 까닭이다.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에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가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물 건너는 사람들이 넘실거리고 빙글빙글 빨리 돌아가는 강물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증이 생기고 몸이 빙글 돌며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곧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어느 겨를에 경각에 달린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경황인들 있을 것이랴. 이토록 위험하다 보니 물소리를 듣지 못하고 물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들 말하기를 요동의 벌판은 넓고 편편하기 때문에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물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요동 땅 강물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오직 위험한 데만 쏠려 바야흐로 벌벌 떨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판인데, 어찌 귀에 소리에 들리겠는가?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도다. 마음에 잡된 생각을 끊는 사람,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거니와,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것을 더 상세히 살피게 되어 그것이 결국 더욱 병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오늘 마부인 창대가 말발굽에 빨을 밟혀서 뒤에 따라오는 수레에 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말의 고삐를 늦추어 혼자 말을 타고 강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굽혀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만 까닭 곤두박질치면 그대로 강바닥이다. 강물을 땅으로 생각하고, 강물을 옷이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까짓것 한번 떨어지기를 각오했다. 그랬더니 내 귓속에는 강물 소리가 드디어 없어져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마치 안방의 자리나 안석위에서 앉고 눕는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임금이 강물을 건너는데 타고 있던 배가 황룡(黃龍)의 등에 올라앉는 위험을 당했다. 그러나 죽고 사는 판가름이 이미 마음속에 먼저 분명해 지니, 그의 앞에는 용인지 도마뱀인지 족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리와 빛깔이란 내 마음 밖에서 생기는 바깥사물이다. 이 바깥사물이 항상 사람의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똑바로 보고 듣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은 그 험하고 위태함은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폐를 만듦에 있어서랴. 내가 장차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시험해 보리라또한 자기만 유익하게 하는 처신에 밝고, 자신의 총명만을 믿는 사람에게 경고 하노라.           


하룻밤에 아홉 번 건넌 강 一夜九渡河記

- 독자와의 내적 대화를 통한 글쓰기 전략 -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실체가 모호한 이미지와 표상을 언어로 환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문법적인 문제에서부터 수사학적인 방법에 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작가 자신에 대한 만족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글이 남에게 읽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되도록이면 본인의 글이 어떤 방해나 오해 없이 독자에게 이해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글이든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글이란 작가의 것이기 보다는 독자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작가 중심이기보다는 독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눈으로 볼 때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 상당히 독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박지원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내면에 상정한 독자와의 끊임없는 상상적 대화를 통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독자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해 나간다는 말이 아니다. 독자가 어떤 점에 의문을 가질 것이고, 어느 시점에서 반박할 것이며, 무엇 때문에 미심쩍어 하는지를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일지 미리 알고 있기에 수긍할 수 있도록 주장과 근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글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쓰기 전략은 글의 내용을 결속력 있게 만들면서 작가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관철시키고 있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도입, 전개, 결말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음은 본문을 살펴보기 위해 10단락으로 나누어 요약한 것이다.

 

도입

1

강물 소리는 여러 가지로 들리는 듯하다.

전개

2

강물 소리가 다양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시냇물 소리도 달리 들리는 것은 가슴에 품은 느낌에 따라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나는 어제 하룻밤 사이에 같은 강 하나를 아홉 번이나 건넜다.

4

5

사람들은 낮에 강을 건널 때는 보이는 물이 무서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밤에 강을 건널 때는 흐르는 물을 보지 못하니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강물을 건널 때 느끼는 두려움도 보고 듣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6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이는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귀와 눈만을 믿는 이는 잘못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7

내가 강을 건너는데 마음을 다스리자 귀에서 강물 소리가 그쳐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8

우 임금도 강을 건너는데 용이 나타났어도 마음을 다스려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말

9

소리와 모양은 모두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는 것이 늘 눈과 귀에 영향을 주어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물보다 더 위험한 인생의 길을 건널 적에,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10

산 속으로 들어가 앞 내의 물소리를 다시 들으면서, 나의 깨달음이 옳은지 시험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제 몸을 보호하는 데 약삭빠르고, 잘못 보고 들으면서도, 제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충고하겠다.



 

  우선 첫째 단락은 당시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 흐르는 소리에 대해 사실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에서 박지원이 상정한 내면의 독자는 물소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물 흐르는 소리가 여러 가지로 들린다고 동감할 것이다.

 

  둘째 단락에서 박지원은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에게 강물 소리가 다양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말을 꺼낸다. 평소에 박지원과 같은 생각을 한 독자라면 박수를 쳐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갑자기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은 그런 독자를 위해 자신의 집 가까이에 있는 시냇물이 마음 상태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게 들리더란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반론에 대한 근거이다.

 

  셋째 단락부터는 박지원의 의견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독자를 위해 자신의 또 다른 경험과 본 것에 대한 예를 들면서 근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는 하지만 아무 두려움 없이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곧바로 하지는 않는다. 박지원은 본인의 경험담만으로는 독자를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넷째, 다섯째 단락에서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알려준다. 박지원은 이 정도면 독자가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 여긴 듯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박지원은 여섯째 단락에서 자신의 주장을 다시 강조한다. 그러고 나서 셋째 단락에서 꺼낸 이야기를 일곱째 단락에서 마무리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니 강을 아홉 번 건너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미심쩍어 하는 독자를 위해 좀 더 권위 있는 우 임금의 예를 들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 임금도 그러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 전달되었다고 판단되자 아홉 번째 단락에 와서야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꺼낸다. 바로‘강물보다 더 위험한 인생의 길을 건널 적에,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한다. 이 말에 지금까지 박지원의 논리 정연한 설득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이던 독자는 다시 한번 당황한다. 물소리와 강을 건너는 두려움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이야기가 결국은 인생의 길에 대한 것임을 알고 깨달음을 갖는 순간인 것이다. 처음부터 박지원이 인생의 길을 건널 때 정신차리고 똑바로 가야 한다고 했다면 독자는 그렇게 흥미 있게 글을 읽어 내려가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이야기라면 선인들이 지금까지 말해 왔던 교훈 중 하나라 여기고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 추상적 관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은 가상의 독자를 떠올리며 매 순간마다 주장과 근거를 적절히 배열하여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독자와의 계속적인 상상적 대화를 통해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박지원은 자신의 경험, 타인의 행동을 본 것과 들은 것, 그리고 권위적인 사례 등을 통한 귀납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끌어 가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박지원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주제를 지닌 글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렇듯 독자가 반론과 의문을 제기할 것에 대비하여 탄탄한 구조 위에 내용을 얹은 텍스트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박지원은 마지막 단락에서 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독자를 위해 말한다. 내가 다시 확인해 볼 것이고, 시험결과가 나의 깨달음과 맞으면 이제 마음 놓고 소인배들을 충고 하겠다고 한다. 박지원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박지원은 글을 끝내면서 독자에게 한 마디 내 던지는 듯하다.

 

‘어떤가, 지금까지 내 말이 그럴듯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자네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네. 그런데 자네도 나처럼 혼내주고 싶은 소인배가 주변에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좀 뜨끔한가?’

 

 

                                                                                                                           이상~  '아리' 지은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