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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

by 안규수 2016. 8. 5.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오늘 이른 아침 하노이로 올라가 업무를 보고 늦은 오후에 호치민으로 복귀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의식~

하나님을 어디서나 어느 때나 무엇을 하든지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묵상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유기성.김용의 외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17세기에 경건한 목사였던 월터 마샬이 쓴 《성화의 신비》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당시의 믿음으로는 자기의 죄에 대한 승리를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죄책감에 휩싸여 살았다.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으로는 도무지 승리를 경험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 문제로 너무 괴로워하다가 청교도 신학자였던 토마스 굿윈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나서 자기 안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양심을 무겁게 하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 고백했다.


그러자 그 분이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지금 자네가 짓고 있는 가장 나쁜 죄에 대해서 빼놓고 이야기하고 있네.
불신앙의 죄 말일세.
자네는 지금 자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자네의 본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네.” 


그때 월터 마샬이 충격을 받았다.
자기는 자기가 짓는 죄가 육체적인 음란이나 거짓말이나 거듭나지 못한 어떤 성품의 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상상도 못해본 끔찍한 죄, 무서운 죄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변화될 것을 믿지 못한다.
가족들이 변화될 것을 믿지 못한다.
자기 교회가 변화될 것을 믿지 못한다.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지, 믿어지지 않는다.


왜 믿어지지 않을까?
아직 주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변화되고, 가족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가 뭘 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에 대해 알고 다 믿는다.
너무나 분명히 믿는다.

그런데 내가 변화될 것을 믿지 못한다.
내 가정이 변화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 교회가 변화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가.
핵심은 그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정말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아직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돌보심 속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그 품에 안겨서 자랐다.
그러다가 나중에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도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게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어느 순간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난 다음에 주님을 섬기는 게 아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가를 알게 된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결정적이다.
성경은 이에 관해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존재이다.
우리 자신은 질그릇이고 우리 안에는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시냐?”라는 걸 말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느냐?”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는 몰랐다.
“예수님은 어디 계시지?” 이것이 내게는 정말 갈급한 문제였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4장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말해주고 계신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당신 안에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갖게 될 때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뒤바꾸신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한일서 4장 13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장 4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저의 본성 자체를 완전히 바꾸고 거룩하게 하실 수 있는 주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합니다.
제 안에 살아계시는 놀라우신 주님을 보는 눈이 뜨이게 하소서.
그로 인하여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내안에 꺼진
주님의 빛을 껴자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행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인도로 선교를 온 스탠리 존스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존경하고 교회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던

간디는 존스 선교사님에게 인도에서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1. 먼저 당신을 비롯한 인도에 머물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십시오.

내가 아는 예수님처럼 당신들이 우리에게 온다면 인도인들은 복음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2.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당신들이 믿는 성경 말씀의 가르침을 지키십시오.

3. 사랑을 강조하십시오. 나는 사랑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것보다는 선행이나 봉사와 같은 어떤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의 사랑입니다.

4. 인도의 종교와 문화를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십시오.

호소력 있게 당신이 믿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문화와 종교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대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세로 선교사님을 통해 수 만 명의 인도인들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 할 것입니다.


주님,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혜와 관용의 사고방식을 갖게 하소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하되 다원주의에 빠지지는 마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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