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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조금새끼/서찬임

by 안규수 2016. 8. 11.

[제1회 등대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대상

조금새끼 / 서찬임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온몸에서 허연 소금기가 버석거린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소금기로 남아 있는 그 무엇  '조금새끼……'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에는 바다에 '조금' 현상이 일어난다. 밤하늘을 묵묵히 밝히던 달이 지구를 잡아 당겼다 놓았다 하기 때문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사리' 때와는 달리 조금밖에 나지 않는 때를 '조금'이라 한다. 이때 항구에 묶어두었던 배는 꼼짝없이 뭍에 주저앉는다.


 조업을 떠나지 못한 어부들은 고기잡이 대신 집으로 들어앉았다. 그물코를 한 땀 한 땀을 잡아 댕기며 시간의 빈틈을 메우는 이도 있었고 둥그런 아내의 엉덩이를 간질이며 시계바늘을 돌리는 이도 있었다. '조금' 때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이유였을까. 그때 태어난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했다.


 통영의 동피랑. 거대한 뿔 같은 벼랑 위의 동네다. 그 옛날 조금새끼의 둥지였던 곳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듯 숨이 벅차다. 언뜻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대화가 어촌의 향수를 바람으로 실어 나른다. 


 "너도 조금새끼냐? 나도 조금새끼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골목은 시작을 알리는 아기들의 울음소리로 점 찍혔다. 그 아련한 음운은 고래 새끼들의 초음파신호처럼 어부들의 뇌파에 진동된다. 들큼한 도다리 미역국 냄새가 집밖으로 풍겨 나오는 동안 좁고 기다란 골목은 신성한 생명력으로 채워 진다. 삶의 질곡에 있어서 자식만큼 자신을 일으켜내는 것은 없다. 그날 그들의 마음은 이심전심이었으리라.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는 인생같이 통영포구에는 바닷물이 부두를 가득 채운다. 어선들은 물비늘을 일으키며 줄줄이 항구를 떠난다. 그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전장에 나가는 병사였다. 전쟁터에서 총을 쏘고 피를 흘려야만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암흑으로 둘러싸인 어선 한 척은 언제 삼키려 덤벼들지 모르는 험한 물을 향해 그물을 던진다.    


 깊은 물에서 시루어졌던 몸싸움으로 전리품이 가득 실렸을 때 뭍을 향해 뱃머리를 튼다. 묵직한 어선은 등대가 쏘아주는 그 불빛을 바지런히 쫓아간다. 부두에 도착한 배 위에서 고기를 정리하는 어부들은 가끔 고개를 들어 집을 올려다본다. 그러면 저 멀리 피랑의 담벼락귀퉁이에 줄줄이 꽂혀있는 조그만 두 개의 불빛과 일직선이 되는 것이다. 달빛 받은 아이들의 간절한 눈망울이다. 그들의 눈 속에 아버지의 배가 맺히지 않을 때 피랑은 또 한 번 눈물바다가 되어야 했다.


 몇 년에 한 번씩은 허기진 바다였다. 평온으로 가장한 바다의 표면이었다.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다에게 모든 것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제삿날이 한날 일 수밖에 없는 그들은 똑 같은 아픔을 지닌 채 살아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을 원망했던 그들이었다. 그래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바다에 뿌리를 두고 바다에서 몸피를 키워야 하는 것은 숙명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단 한 번도 뱃머리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아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한 번도 직선으로 이어지는 눈빛을 가졌던 기억이 없다. 굽이굽이 긴 세월이 지나서도 만나기 어려운 파도 같은 곡선이었다. 아버지는 배가 완성될 때마다 배의 고동소리를 따라가듯 우리를 뿌리쳤다. 나와 내 동생들은 험한 세상의 조금새끼가 되었다. 남들은 뱃고동 소리가 희망찬 출발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소리가 슬픔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상처가 나고 비늘이 벗겨진 생선처럼 우리는 고무 대야 속에서 호흡을 몰아쉬기도 하고 물이 빠져버린 뭍에서 온몸에 진흙을 칠갑을 하며 펄떡거려야할 때가 많았다. 제 각각 난 상처 때문에 서로 등을 비비지도 못했다. 그저 부대끼다가 험악한 꼴로 모양이 변해가기도 하고 썩어 갈 듯이 힘겹게 살아왔다. 그렇게 견딘 시간이 더딘 듯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세월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일까.


 나는 맏이였다. 부모에게서 맨 처음 난 것은 다음 것에 대한 책무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바다든 육지든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살아나가야 하는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내 등이 아파 동생들의 등을 톡탁거리며 어루만져 주질 못했다. 상처를 만지면 덧날까 더 곪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분명 있었다.


 동생들은 내가 다 쓸어주지 못한 상처의 비늘은 하나쯤 감추고 있다. 투명하고 여려 부서질 것 같던 비늘이 단단한 껍질로 변했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치유되지 못한 작은 비늘이 보인다. 그 비늘은 수 천 년 바닷바람 속에 버텨온 어부들의 유전자를 닮았다. 태초의 양수인 바다가 썩지 않듯이 인간의 양수 속에서 자란 조금새끼는 결코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마흔을 훌쩍 뛰어 넘으면서 누구나 하나쯤 아픈 비늘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픈 경험도 어떻게 겪어 내느냐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음을 깨달아본다. 이 세상에 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혼자만 조금새끼인 듯 한숨으로 보낸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한 치 생각을 돌리니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조금새끼가 아닌 것이 없다는 안도의 숨이 몰아져 나온다.


 빠졌던 바닷물이 채워져 일렁거린다. 지구 반대편 어느 뭍에서는 조금새끼가 무더기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문득 몸을  돌려 조금새끼의 인연에 손을 내밀어 본다.

 

 

[심사평]

제1회 등대문학상 공모전에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응모해 왔다.


 전체 응모작 수준 또한 부문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국 평균치를 웃도는 역작들이 많아 앞으로 이번 공모전이 더욱 열기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시조 부문에서는 상투적이거나 생경한 언어가 시적 분위기를 해치는 작품을 예선에서 걸러내고, 폭 넓은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해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세계에 대한 천착과 시적 긴장감이 있는 우수작을 선정해 심사의원들이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등대의 시'를 최우수작으로, '노인과 바다'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수필 부문에서는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9편을 대상으로, 지역성과 향토성을 바탕으로 바다의 이미지와 삶을 연관시킨 미적구조가 어떻게 펼쳐져 있는 가를 심사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심사위원간의 합평과 재독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그 중 소재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는 '조금새끼'와 '비나리'를 우수작으로 선정한 후, 더욱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문장력, 참신한 소재발굴, 바다에 대한 깊은 해석력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조금새끼'를 최우수작으로 '비나리'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대체적으로 글의 기본인 문장력이 탄탄하거나 소재 장악력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응모작을 여러 번 숙독한 결과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이 '실종', '고래사냥', '여름의 끝', '바다가 준 선물' 등 네 편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탄탄한 문장고 소재 장악력 등 많은 장점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천착이 부족하거나, 구성의 긴장감이 미흡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더욱 분발을 기대해 본다.


 대상작은 각 부문 최우수작을 중심으로 심사위원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 수필 '조금새끼'를 선정했다.


 해운항만청과 해운 항만공사가 주최하고, 울산신문사와 울산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등대문학상 공모전이 앞으로 더욱 발전해 바다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증폭시킬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한국해양문학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공모전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이상렬의 수필 감상'에서 퍼온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