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열흘전에 삔 팔목, 며칠전부터 시작된 치통...
올해들어 가장 좋지 않은 컨디션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가득한 하루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동원 목사님의 <당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어제의 예언, 오늘의 복음' 이라는 책중에서>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내면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죄를 직고해야 할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에게서 도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보여준 반응과 같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
죄를 범한 인류는 그 후 언제나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고사성어로 ‘이장폐천’(以掌蔽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손바닥을 펼쳐 하늘을 가리려 할지라도 자기 눈만 겨우 가릴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양심의 정죄를 면하기 위해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곳으로 도피합니다.
예배당을 떠나 술과 유흥, 쾌락, 여행 등을 찾아 세상으로 도피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그분을 과연 우리가 피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차라리 시편 기자의 고백을 따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7-10)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제라도 속히 하나님의 법정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서 살 수 없는 존재라면
차라리 정직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자비, 그분의 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하나님의 “오라!”라는 초대 명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에게 해결책이 있습니다. 도피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직면만이 해결책입니다. 도피가 쉬울까요, 직면이 쉬울까요? 얼핏 보면 상황 회피가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도피의 길이 훨씬 험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그를 기다리던 것은 풍랑과 파도, 죄책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결국 바다에 던져지는 운명이 됩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비릿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심연(深淵)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나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과 존재의 궁극적 원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것만이 해결책입니다.
그것만이 희망입니다. 속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5장 12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히브리서 10장 17절
죄를 지었을 때 숨거나 피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 고백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 죄사함의 은혜와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 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엘리자베스 로스는 어렸을 때 나무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 끔찍한 경험은 그의 트라우마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의학을 공부하며 의사가 되었고, 죽음에 다다른 사람, 임사 체험을 한 사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평생 동안 관찰 하며 죽음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언제나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와 관찰을 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죽음의 여의사’라는 꺼림칙한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죽음을 준비하 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30년간 죽음을 연구했던 그녀는 자신의 에세 이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 연구의 가장 핵심이자 중요한 본질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결국 죽음의 의미와 물음은 ‘어떻게 살았는가?’로 결정되어 진다.”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을 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살아온 삶, 그리고 살아갈 삶에 의해 죽음이 의미를 가지고,
그 죽음 이후의 삶 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십시오.
반드 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죽음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통해 평안을 얻게 하소서!
그 어떤 날보다도 오늘 하루가 가장 의미있는 날임을 깨닫고, 가치있게 살아가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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