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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댓꽃 피는 마을'을 읽고/박소현

by 안규수 2018. 7. 10.

안규수의 댓꽃 피는 마을은 필자가 고향의 옛집을 다녀온 이야기로서 서정성과 함께 삶에 대한 관조를 길어 올린 격조 높은 글이다. 고향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써 보았을 평범한 소재가 아닌가. 그런데도 이 작품이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삶을 투영시킨 높은 문학적 은유 때문이다.

  필자는 사물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영혼을 불어 넣는다. 필자의 고향 마을에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감사 안은 대나무 숲이 있다. 대나무는 100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우고 꽃이 지는 순간 임종을 맞는다고 한다. 필자는 그 대나무의 일생을 통해 인내와 절제, 삶과 죽음에 대해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오월 한낮 대숲에는 는개가 내리고 있다. 고요하다. 고요는 소리 없음이 아니다. 외려 수런수런 은미하고 내밀한 소리의 세계다.”로 시작 되는 이 글은 문장력 또한 유려해서 읽는 내내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다. 작품 뒤로 갈수록 보편적 삶의 체험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였다. 역시 예상을 져버리지 않았다.

   ‘대나무가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운 다는 것은 기실 드러난 나무가 아니라 그 뿌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땅속의 숨은 뿌리가 모두 죽어버림으로써 대숲 전체가 사라져버리는 그의 죽음은 자못 비장하다. 일생에 단 한 번 꽃 피우고 죽는 그의 삶. 옛사람들은 그것도 닮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죽기 전 에 딱 한 번은 꽃을 피우리라는 그러한 기대와 확신을 갖고자 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죽음 앞에 당도해서야 생의 모든 순간이 꽃이었던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중략) 촘촘히 들어서서 허리 한번 구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온 대나무들은 대꽃이 피는 여기 이 마을까지 오는데 백 년이 걸렸다.

   중생이 육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집착과 미련 때문이라고 한다. 육도를 벗어나면 열반이다. 꽃을 피운 대나무는 집착이나 미련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일시에 모두가 사라져버린다. 백 년을 걸어 대나무가 도달한 곳은 피안의 마을인 것이다.’

                                                                        -안규수의 <댓꽃 피는 마을>부분

                                                       한국산문 2017. 6월호 월평란 박소현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