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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이재만 선교사의 편지

by 안규수 2019. 3. 29.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나의 미래' 가치~ 
'이웃의 현재' 가치~
 
나의 '미래' 를 위해 지구촌 이웃들의 '현재' 를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와 우리의 아픔을 봅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향한 시선이 이웃에게로 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창조과학선교회 회장이신 이재만 선교사님의 편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부 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비현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통해서 현실로 건져내심을 받은 것입니다(갈 1:4).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나무에게 절하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비현실로 들어선 것입니다. 
17세기부터 유럽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을 빼고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자 
19세기에 들어 비현실인 진화론이 등장했습니다. 
사람이 동물 중에 하나로 떨어지고, 경쟁의 원리가 정당화되는 비현실로 들어섰습니다.
 
1859년 출판된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다음으로 누구의 책을 읽었느냐에 따라 둘로 나뉘었습니다. 
맑스의 책을 읽은 사람은 공산주의를, 스펜서의 책을 읽은 사람은 무자비한 자본주의를 택했습니다. 
두 사람의 책을 모두 읽었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어느 쪽에 설 것인지 한 쪽을 택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이 두 이데올로기가 아주 대립되는 사상같이 보였지만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서 투쟁과 경쟁의 산물로 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둘 다 성경을 떠났으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버린 것입니다(요 10:11). 
그러므로 20세기 초 세계는 투쟁으로 얼룩지는 참혹한 기간을 보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6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뿐 아니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혁명과 내전 동안 1억 명이상, 무자비한 자본주의로 수백만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이끌었던 맑스, 레닌, 스탈린 등은 모두 세례를 받았거나 심지어 신학생이기도 했습니다. 
무자비한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카네기, 록펠러, 포드 역시 교회 환경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을 수용하자 모두들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사회에 잔인하게 적용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진화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자 세상은 비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특별히 공산주의를 수용했던 국가들은 한결같이 종교를 배척합니다. 
기독교에 대하여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많은 대상이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진화론으로 인해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엡 4:18) 모습을 봅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 대부분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들이 한계를 인정하고 기존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지금도 여전히 학교에서 우리가 진화론을 사실로 교육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잔인함의 잠재성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한계의 발견만이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답은 진화론에서 벗어나 선한 목자이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성경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지난 해부터 Creation Truth를 통해서 사회진화론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두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이 세대를 분별하고 유일한 해답인 예수님으로 더욱 기뻐하는 한 달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재만
창조과학선교회 회장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회사에 중요한 고객을 대접하러 한 레스토랑을 찾았습니다.
 
식사를 즐겁게 마치며 협상도 잘 끝나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마쓰시타가 갑자기 종업원을 부르더니 
미안하지만 주방장을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마쓰시타가 부른다는 소리에 서둘러 나온 주방장은 접시를 보고는 식은땀을 흐렸습니다.
마쓰시타의 접시 위에 스테이크가 반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손님인데 실망을 시켜드렸구나, 내가 요리에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이걸 어쩐다...´
 
그러나 주방장의 예상과는 달리 마쓰시타는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음식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 같이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반이나 남기고 말았는데 혹시 스테이크가 남아있는 접시를 보고 마음이 상하실까봐 
바쁜 와중에도 잠시 나오시라 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요.˝
 
이 말을 들은 주방장은 마음 깊이 감격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작은 삭개오가 수많은 인파 가운데 나무에 올라 있는 것을 본 세심한 예수님의 시선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작은 일에도 배려하는 자세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말이나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삶의 작은 곳에서 남을 향한 배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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