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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반전 묘妙 김홍기의 '질긴 것'을 읽고

by 안규수 2019. 12. 8.

시의 마음, 소설의 시점. 희곡의 카타르시스 그리고 수필의 나. 수필의  '나' 는 그냥 내가 아니라 '나'라는 인격체가 사는 세상이자 그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수필의 '나'는 '우리'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가까운 해남 산이면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향 미국으로 이민 간 저자, 등단작 '질긴 것'은 그 옛날 흑백 영화 같은 어릴 적 '나'를 엄마의 사랑을 통해 형상화한 좋은 작품이다. 글의 소재가 세 개로 나누어져 있지만 주제는 하나다.


검은 염소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아 엄마가 그 중 한마리를 팔기 위해 장바닦에 내 놓았다. 흥정이 되어 고삐줄을 나이 지긋한 남자에게 넘겨주자 염소새끼는 꿈적도 않고 엄마 얼굴만 쳐다 보면서 버틴다.  엄마와 염소의 눈 빛이 마주친 것이다. 엄마는 그만 흥정을 취소하고 만다.

"아자씨 미안허요.안되겠소 그냥 내가 키울라요."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빠의 역정을 듣고 부엌으로 들어 가면서, '정구렁 칡넝쿨만 질긴게 아녀.' 한다.


집안에서 자주 소동이 일어 났다. 가끔 집을 나가는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큰누나 때문이었다. 그러다 읍내 정미소에서 말 달구지를 몰고 나락을 운반하던 총각하고 눈이 맞아  결국 아빠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누나는 머리 카락을 가위로 듬성듬성 잘리는 수모를 겪고도 집을 나갔다. 그런 누나를 엄마는 아빠와 달리 '그러면 엄마는 죽어도 니 편'이라며 쓰다듬어 주었다. 누나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이불 몇 채 가지고 시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골에서 애증이 깊은 부모님을 임종 때까지 모시고 산 형제는 다름아닌 큰누나였다. 


마지막 소재는 조부모님과 종교적 갈등을 겪는 엄마 이야기다. 집안의 전통인 유교 사상을 고집하는 조부모 밑에서 엄마는 교회를 다닌다. 그 갈등은 바람난 큰누나와 아빠의 갈등 보다 더 심각했던 모양이다. 집안이 늘 갈등 가운데 있었다.그러다 조부모님이 12년 동안을 병석에 누워 그 뒷바라지는 당연히 엄마 몫이었다. 임종을 앞두고 조부모님은 엄마를 부르셨다. 당신 며느리 손을 꼭 잡고 유언을 남겼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내 장례는 교회장으로 하라."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의 묘' 가 무척 흥미롭다. 문맥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어릴 적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감칠맛나게 전개하면서 사랑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 빛이 있는 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양지와 음지, 그 숙명 속에서 그늘진 곳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그늘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밝은 눈을 수필 속의 '나'는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홍기 작가를 쌍수로 환영한다. 앞으로 좋은 글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길 심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