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겠지요. ^0^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른 전파력을 가진 바이러스 앞에
당분간 모임을 자제하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몇 주간 온라인 영상예배 또는 가정예배로 대체하는 교회들이 있다고 합니다.
불안에 떠는 이웃들의 건강을 배려한 결정이기에~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공예배를 몇 주간 내려 놓는 큰 고통을 감수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기에~
이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어 일상의 평화가 회복되고 주일 공예배가 재개되기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진황목사님의 <하나님 음성 듣기>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기독교 고전 중에서 찰스 쉘던(Charles Monroe Sheldon)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In his steps)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의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에게는 매일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세상의 문제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도 어떤 기준과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그런 질문 앞에서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목사님,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행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오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문제에 대해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청년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문제를 가져오는 청년들 중에는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결론을 저에게 확인 받고 싶어 할 뿐입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지요. 자신들의 의견과 생각을 지지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저는 “그렇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넌지시 던집니다.
그러면 저도, 상담을 받으러 온 청년도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행해야 할지,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 듣습니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때로는 상황 가운데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으로 접근해본다면,
우리에게 들리는 그분의 음성이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가 그 음성에 따르느냐, 그대로 실천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함에도 그 음성에 따르기 힘든 경우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임에도 도저히 따를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 가족, 혹은 직장에서 다툼이 발생했다고 합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묵상하는데,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이 들립니다.
“네가 먼저 용서해라.”
“주님, 아시잖아요.
이번에는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잖아요. 정말 억울해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해요? 이번에는 정말 못하겠어요.”
그렇게 반응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갈 때,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어디에 있었니?
내가 매질을 당하고, 살이 찢겨져 나갈 때, 너는 나를 부인하지 않았니?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니? 너는 나를 부인했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나는 하나님 앞에서 너를 절대 부인하지 않았단다. 그래도 네 그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없겠니?”
우리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합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을 따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는 문제 앞에서 주님의 음성이 너무도 분명할 때 우리는 갈등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나 중심으로 살아가면, 주님의 음성을 따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단하면 조금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삶의 중심을 주께 두고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면,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시며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매 순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우리의 삶을 제어하고 옭아맨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의 방향은 사랑, 용서, 자비, 평안, 화해, 이해, 배려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 이해하고, 무조건 다 참고 인내하고, 무조건 다 견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무조건’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한 사탄의 미혹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 믿음까지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음성 듣기. 이진황 / 규장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사무엘상 16장 7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명기 6장 5절
하나님, 나의 중심을 주님께만 두기 원합니다.
나의 중심을 주님께 두는 것이 삶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참 자유와 사랑과 은혜, 평안, 배려를 누리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세상의 유혹 앞에 성령님 도우시고 이끌어주시며 용기를 주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미국에 허리와 발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은퇴의 기로에 선 야구선수가 있었습니다.
선수로 복귀를 해도 얼마나 활동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남자의 마음은 이미 은퇴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은퇴를 결심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언젠가 다시 꼭 경기장에서 절 위해 홈런을 날려주실 거죠?”
세상의 무엇보다 아들을 사랑했던 남자는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기나긴 재활을 거쳐 다시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남자는 보란 듯이 홈런을 쳐내며 부상 전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냈습니다.
1998년도 70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으로 역사를 다시 쓴 마크 맥과이어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들이여, 여러분이 자녀의 영웅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녀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입니다.
좋은 믿음과 좋은 성품과 좋은 상황을 경험하며 자라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아끼고 축복하십시오.
그리고 그 자녀가 커서 독립을 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교회에 함께 가서 예배 때 옆자리에 앉히고 가족이 함께 예배하십시오.
자녀가 어디를 가든 교회당을 볼 때마다
가족이 함께 하나님께 드린 예배를 기억하며 가족과 하나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자녀에게 가족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 드린 기억을 만들어 주십시오. 아멘!!
주님! 귀한 자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자녀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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