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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평 글쓰기 요령

희망의 꽃씨를 심다.-박춘의 「오금공원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고

by 안규수 2020. 5. 25.

  글은 곧 사람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 뷔퐁이 한 말이다. 이 말을 서두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서두의 말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유를 버무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문학이다. 따라서 수필만큼 그의 사람됨을 확연히 드러내는 장르도 없다 하겠다.
  에세이스트 91호에 상제된 박춘의 「오금공원에서 보내는 편지」를 보면 모두에서 언급한 말이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 글에서 미덕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작가가 평생 살아온 삶의 진솔한 태도이다. 그리고 착한 심성이다. 이점이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가장 큰 흡입력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의 수필이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한층 사유의 폭이 깊고 넓어진 것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책을 섭력한 독서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춘 작가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선친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고,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집이어서 어린 시절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아흔 셋 고령임에도 지금도 정정하게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그는 50대 초반에 강직성척추염이라는 희귀병을 진단 받는다. 근육 내장이 굳어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는 끝내 무서운 병을 이겨낸다. 평소 구부정한 허리와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 병의 후유증이다. 그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의 치료를 받고 있다. 병을 이겨 내고 그가 찾은 곳은 도서관이다. 최근 코로나 괴질로 약 3개월 문을 닫아 가지 못했을 뿐 지금까지 거의 결석한 적이 없다. 주로 철학과 경제에 관한 책을 주로 읽다가 에세이스트에 입문한 뒤부터 문학서적도 탐독하고 있다.

 

  오금공원 동남향의 비탈은 6년 전 입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청소년 몇이 모여서 놀다 그곳에 불을 놓았습니다. 대략 40여 평 불에 타서 휑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 안 되어 보였습니다.

 

  이 수필의 모티브는 여기서 시작한다. 그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찾는 송파도서관 뒤 오금공원은 그의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다. 근육이 굳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철없는 청소년들 불장난으로 타버린 휑한 빈터가 항상 마음에 거슬렸다. 3년간 도토리를 열심히 심었으나 웬일인지 여름만 되면 죽어버렸다.

 

  지금도 저는 노랗게 변한 들녘과 불순물 하나 없이 맑고 노란 은행잎, 핏빛처럼 골 붉은 감나무 잎을 가을 단풍의 극치로 생각합니다. 아무리 멀리 떠나왔어도 고향 유년의 삶은 나를 옴도 뛰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학창시절 장성 백양사와 정읍 내장사의 가을 단풍을 기억해 낸다. 무리지어 붉게 타는 색의 세계에 정신을 놓았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의 심장 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보았던 그곳 단풍의 아름다움 모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처럼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단풍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단풍나무 씨앗을 따 모으기 시작한다. 이 봄날 그는 빈터에 열심히 씨앗을 심고 흙을 다독인다. 그는 세월이 지나면 그곳에 어릴 적 보았던 그 단풍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이 즐거워 할 것이라는 꿈을 꾼다. 그가 어릴 적 꿈꿨던 맑고 투명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박한 희망을 심은 것이다. 씨앗이 담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 그것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씨앗들이 싹이 돋고 자라 실팍한 모습이 되면 이곳은 때 아닌 단풍이 자지러지겠습니다. 그 때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요. … 아무리 그래도 예전 내가 무심하게 그랬듯, 누군가 이틀 동안 부러 씨앗을 따오고 심었음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인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흘러가는 것이 아닐는지요.

 

  작가의 사유가 돋보이는 장면이 결미부분에서 펼쳐지고 있다. 흔히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인연’이란 말을 많이 쓴다. 즉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쁜 만남도 인연이다. '인'이 씨앗이면 '연'은 밭이다. 그러므로 '인'만 있어서도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만 있어도 그 결실은 없다. 씨앗을 심고 자라서 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자연과 인간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의 수필은 정서적인가하면 지적이고, 철학적인가 하면 사회적이다. 그래서 그의 수필에는 애틋한 정감도 느껴지고, 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담겨 있으며 동시에 그의 수필에서는 대자연적인 고뇌도 읽히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건강이다. 어서 빨리 건강해져서 그가 한 번도 못가 본 제주도에도 가보고 해외여행도 함께하길 소원한다. 이제 작가 박춘은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넓어지고 한층 깊어져서 문단에서 우뚝 서는 작가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