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윤작가의 수필은 시적 수필이다. 시 같은 아름다움이 있고 비유를 통한 감정이입이 출중하다. 그의 글에는 시적 정신이 살아있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시적 풍미 때문이다. 모든 수필이 그러하겠지만 수필의 생명은 진정성에 있다. 그 진정성이 독자에게 교감이 되고 공감하게 한다. 그의 수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징성이 있고 그 상징은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항상 맑고 깨끗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정확하다. 누군가 ‘문체가 사람이다’ 했듯이. 그의 성품 또한 그의 작품처럼 따뜻하지만 지나침이 없고 결곡하다. 이번 연간 집에 실려있는 작품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소재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꿈이 서린 어린 시절을 소환하고 있어서다.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크셨다. 나중에 우리는 죄다 어머니들에게 불려갔다. 어머니가 시킨 탓도 있지만, 사실은 진심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 앉은 채 말없이 사랑하나를 손에 쥐여주셨다.
그 미꾸라지들은 살아서 유영하고 있다기보다는 미친 듯이 몸을 까뒤집으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까지가 나의 영역이었다. 그곳을 벗어나면 다른 세계가 나오고 내가 그 세계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곧 위험에 빠지거나 길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그 형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그 형의 삶에 내 삶을 투영하고 있었던 까닭은 아닐까.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난 네가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우리 둘만이 집에 남아 있었다. 누가 이끌었는지 우리 둘은 마루 밑으로 기어가 들어갔다. 그리고 비좁은 그곳에서 그 키스 장면을 흉내 냈었다. 갑자기 어둠이 사라지고 우리는 환한 빛에 휩싸였다.
이 작품에서도 시적인 감수성으로 고달픈 삶의 단면들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지닌 삶의 현실을 감정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것이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가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이 작품 전편에 넘쳐흐르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북에 두고 홀로 남하한 할아버지의 외롭고 고단한 삶, 나무통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미꾸라지를 보고 그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위험에 빠질 거란 생각, 가수 지망생의 형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 것은 작가가 학창 시절 학교를 대표해서 백일장에 나갈 때마다 장원을 독차지 했지만 현란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괴감일수도 있다. 후일 고등학교 동창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난 네가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줄 알았다'고 말 할 정도로 문학적 자질이 뛰어난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에세이스트는 물론이고 장안의 수필 문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손꼽히는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그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의 이름은 혜화. 두 사람은 광주 계림극장에서 청춘 배우의 키스 신을 보고 나서 어느 날 어두운 마루 밑에서 생애 첫 키스를 한다. 그 혜화가 부산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영영 헤어지고 만다. 누구든 말 못 할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는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차원적 현상이 아니다.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등으로 무한히 얽혀 얼룩져 있다. 그 장면들이 작가의 예리한 눈과 사유로 그려지고 있어 독자에게 공감과 감명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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