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산상수훈을 요약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는 예쁜 마음만 가져,
나머지는 내가 해. 내가 있잖니?
나는 네 필요를 이미 알고 있고,
네게 관심이 아주 많아. 걱정하지 마."
세상 살아가기 피곤하고 억울해도
내가 이길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보고 계시고 기억하신다는 것.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유세은님의 <너무 죽고싶어서 너무 살고 싶어요>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내가 좌절을 넘어서 절망 상태에 있을 때, 앞으로도 뒤로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일 때도
하나님은 내게 무조건 참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겸손하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당시에는 이런 명령이 참으로 야속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바보가 된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는 내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잡아먹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과장이 나를 모함하고 몰아갈 때 정말 무안했다.
참으면 참을수록 바보 취급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화도 못 내는 바보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우겨댔다.
차라리 나도 과장을 험담하고, 내가 좋을 대로 사건들을 재해석해 떠들어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괴롭힘과 헛소문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으면 억울하게 당할 것 같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가 퍼뜨리는 헛소문을 나도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한쪽 이야기만을 사실로 믿고 그들이 듣고 싶은 대로 소문을 부풀렸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성경을 폈다.
혹시 맞불 작전을 펴도 된다는 이야기는 없으신지 찾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부분을 읽게 되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12
이 이후의 말씀 또한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구제를 은밀히 하라. 외식하지 말라. 세상 보물을 욕심내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이다.
처음 이 말씀을 봤을 때는 너무 억울했다.
‘뭐 이런 말씀이 다 있나? 그냥 호구가 되라는 말인가,
아니면 과거에는 세상이 지금처럼 야속하지 않아서 이것이 가능했나?’
하지만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악이 가득했고,
당시 사람들도 이 말씀을 한 번만 봤을 때는 나와 동일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억울한 지침들이 전혀 억울한 것이 아니게 되는 근거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천국 가기 위한 처세술의 핵심만을 모은 ‘족보’임을 알 수 있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마 6:6-8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행동을 늘 보고 계시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계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억울한 것, 착한 일 한 것, 주님을 위해 일한 것, 걱정하는 것, 구하는 것,
미워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규칙이 어리석지 않은 이유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 하나만으로
어려워 보이는 예수님의 규칙을 진심으로 지킬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수님도 산상수훈대로 사는 게 정말 억울하고,
어쩌면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음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예수님도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사셨기 때문에 어쩌면 화를 낼 때는 화를 내고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며 사는 것이 세상 살기에 더 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고,
예수님의 규칙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형편을 이해하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국에 이르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규칙을 따라야 하기에
우리가 세상의 법칙대로 서로 미워하고, 복수하고, 걱정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 듯 하나님은 그냥 지키라고만 하지 않으셨다.
이미 다 알고 계시니 걱정하지 말고 천국 규칙으로 선하게 살라고 하셨다.
사실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사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쩌면 화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알아주신다니!
욕심, 시기, 질투, 미움 등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다 악하고 마음에 많은 짐을 지우는 것들이다.
우리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남을 미워하기 위해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것들은 지옥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악이며 사단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산상수훈을 요약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는 예쁜 마음만 가져, 나머지는 내가 해. 내가 있잖니?
나는 네 필요를 이미 알고 있고, 네게 관심이 아주 많아. 걱정하지 마.”
세상 살아가기 피곤하고 억울해도 내가 이길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보고 계시고 기억하신다는 것.
– 너무 죽고싶어서 너무 살고 싶어요, 의연,그림_유세은 / 규장
† 말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기 23장 10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2절
† 기도
주님, 하나님의 자녀로 이 악한 세상을 살아내며 억울한 일이 참 많으나 주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불쌍하고 약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천국길로 인도해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히브리서 10:34-39
지독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았고,
선잠으로 1~2시간 정도 자다 깨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입원까지 했고
다양한 처방을 받았음에도 증세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약도 먹지 않았는데 저녁에 잠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하던 환자에게 누군가 다가왔고 흔들어 잠을 깨웠습니다.
그 사람은 환자를 담당하던 간호사였습니다. 간호사는 환자를 깨운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면제 먹을 시간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잠을 자려고 먹는 약이 수면제인데, 잠이 든 사람에게 수면제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치료가 된 사람을 다시 병에 걸리게 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이보다 더한 실수를 우리도 할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다른 도를 찾고 따르는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약속받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구원이나 약속은 필요가 없습니다.
영원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자백함으로(요일 1:9) 다시 돌아오십시오. 아멘!!
주님! 언제나 동일하신 주님을 향한 믿음을 주소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약속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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