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오늘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김기석 목사님의 <일상 순례자>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베네딕트 성인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는 수비아코에 있는 동굴에 숨어 삼 년간 기도와 관상의 세월을 보냈다.
그곳에 성인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고 자연스럽게 수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대그레고리오는 《대화록》에서 베네딕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 미친 여자가 있었다.
그는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숲으로 쏘다녔다.
기력이 다하여 쓰러졌을 때만 쉴 뿐이었다.
정처 없이 헤매던 어느 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베네딕트의 동굴에 들어가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여인이 그 동굴을 떠나는 순간,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싶게 멀쩡해져 있었다.
그는 여생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어떤 설명을 덧붙인다면 그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베네딕트의 동굴과 오늘의 교회를 나란히 놓아 보니 왠지 씁쓸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
부풀려진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에 깃든 허섭스레기들을 걷어내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만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 실감난다.
“신들을 찾아 나선 여행길이 고되어서 지쳤으면서도, 너는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너는 우상들이 너에게 새 힘을 주어서 지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구나”(이사야 57:10).
오늘의 교회가 이런 헛된 관념을 강화시켜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앙은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이다.
제정신을 차린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은
누구도 가인처럼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우’를 지키는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진다.
사사로운 나를 버리지 못한 사람,
거리와 봉쇄된 직장에서 억눌린 함성을 지르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에
반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조차 알지 못한다.
고요함의 오아시스에서 기쁨과 치유의 샘물을 맛본 이들은
또다시 광야를 향해 떠나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리듬이니까.
마음마저 타오르는 염천의 날에
형제자매를 위해 시원한 샘물 한 잔이 되어 주는 이는 복이 있다.
< 일상 순례자, 김기석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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