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사의 숲에서 인도에서
조선의 하늘에서 알라스카에서
찬란하게도 슬픈 노래를 배워낸 바람이 대숲에 돌아들어
돌아드는 바람에 슬픈 바람에 나는 젖어 온몸이 젖어……
란아
태양의 푸른 분수가 숨막히게 쏟아지는
하늘 아래로만 하늘 아래로만
흰 나리꽃이 핀 숱하게 핀 굽어진 길이 놓여 있다
너도 어서 그 길로 돌아오라 흰 나비처럼 곱게 돌아오라
엽맥이 드러나게 찬란한 이 대숲을 향하고……
하늘 아래 새로 비롯한 슬픈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또 먼 세월이 가져올 즐거운 이야기가 대숲에 있고
꿀벌처럼 이 이야기들을 물어 나르고 또 물어내는
바람이 있고 태양의 분수가 있는 대숲
대숲이 좋지 않으냐
란아
푸른 대가 무성한 이 언덕에 앉아서
너는 노래를 불러도 좋고 새같이 지줄대도 좋다
지치도록 말이 없는 이 오랜 날을 지니고
벙어리처럼 목놓아 울 수도 없는 너의 아버지 나는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내 심장을 삼으리라 .
▶ 시_ 신석정 – 190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했다.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간행한 이후, 『슬픈 목가』,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 생전에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