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가 주목한 수필집|⑤-안규수 《무진으로 가는 길》(2021, 소소담담)
개인적 체험이 민족의 역사로 승화
백남오
1.수필 〈대꽃피는 마을〉
알베르 까뮈의 이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장 큰 불행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랑이란 말 대신에 수필로 치환시켜도 좋을 듯싶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수필가는 독자를 가질 수가 없다. 가장 큰 불행은 독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사랑하지 않는 작가이다. 독자를 사랑하는 수필가야말로 가장 진정성을 가진 작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어김없이 안규수 수필가를 떠올리곤 한다. 자기만이 최고인 시대, 너는 없고 나만 존재하는 시대, 결코 타인의 능력이나 노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메마른 시대. 편파적인 시각과 냉소로 쉽게 상대를 폄하하려는 이기적인 현실에서도 안규수는 이미 타인의 장점만을 보려 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수필〈대꽃 피는 마을〉이다. 이 작품을 읽고 우리 시대 좋은 수필가로 회자 될 만큼 사유와 감수성까지도 갖춘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오월 한낮 대숲에는 는개가 내리고 있다. 고요하다. 고요는 소리 없음이 아니다. 외려 수런수런 음미하고 내밀한 소리의 세계다. 가는 빗방울이 댓잎을 간질이는 소리가 들리고 댓잎이 댓잎을 서로 부르고 비비고 밀어내는 소리가 들리고, 늙은 대나무가 옹이 진 뿌리를 뒤틀며 부드러운 땅 위로 기어오르는 소리까지 들린다. 나는 그 고요를 자박자박 밟으며 걸어 들어갔다. 내 고향은 징광산 자락 언덕배기 다랑이 논배미에 농사를 짓고 살아온 가난한 마을이다. 그래서 이름도 ‘가는골’이다.(중략) 마을 골목길로 내려왔다. 오월의 향기와 바람결은 아직 여전한데 반세기가 흘러 가버린 지금, 적막에 휩싸인 마을은 유령 마을 같다. 한때 60여 호가 넘어 활기차던 마을은 이제 20여 호만 남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아주 오래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에는 집마다 노인들뿐 젊은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마을 이장이 예순을 넘었는데 그가 제일 젊은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중략) 수호신처럼 마을을 감싸온 대나무 숲은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대나무가 모두 말라 죽으면 그 자리에서 작은 죽순이 올라오는데 그 어린 대도 모습을 갖추기 전에 다시 꽃이 피고 죽기를 두 번, 세 번 거듭하고서야 비로소 새로운 대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고 한다. 내 고향도 쇠락의 길 끝자락까지 다다르면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대꽃피는 마을〉부분
고향을 떠난 작가가 50년인가 60년인가를 지나서 귀향한다. 그야말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고요와 적막 속에 잠긴 마을은 한때 60여 호가 넘어 활기찬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20여 호만 남아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곳에서 작가는 백 년을 걸어 대나무가 도달한 피안의 세계를 상상한다. 인간도 백 년을 걸어 죽음에 이른다며 피안의 마을, 열반의 마을을 꿈꾸는 것이다. 대나무와 인간이 예부터 깊은 우정을 나누어 온 것에 작은 지푸라기라도 연결해보고 싶은 상상력이다. 작가는 결코 뿌리인 고향의 소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비록 외적으로는 소멸의 길을 갈 지리라도 그 내면에 흐르는 정신과 역사는 대나무의 뿌리처럼 더욱 튼튼하게 퍼져나갈 것임을 소망한다.
사시사철 푸름을 잊지 않는 대나무는 뿌리를 통해 대숲을 형성한다. 잘 자란 나무는 4~5년이면 베어지는데, 땅속 거대한 뿌리는 평생 자리를 지키며 베어진 자리에 어김없이 죽순을 밀어 올려 대숲을 유지한다. 그러다 백 년이 되면 그 뿌리에서 올라온 모든 대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지는 순간 임종을 맞는다. 대나무가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 뿌리의 이야기이다. 땅속의 숨은 뿌리가 모두 죽어버림으로써 대숲 전체가 사라져 버리는 죽음은 비장하다. 어쩌면 죽음 앞에 당도해서야 생의 모든 순간이 꽃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는 깨달음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대꽃이 피는 여기 이 마을까지 오는 데 백 년이 걸렸다고, 그 고단한 일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2.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
그로부터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인 2021년 12월 초에 안규수는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을 소소담담에서 펴냈다. 작가의 말을 시작으로, 제1부 기억이 흐르는 강, 제2부 유년의 뜰, 제3부 눈 내리는 날, 제4부 선암사처럼 늙어라, 제5부 정글은 말이 없다 등 41편의 작품이 수록되었고, 이운경 평론가의 해설을 붙였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말에 들어있는 다음의 한 구절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큰엄마는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은 고달픈 인생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들은 뼈아픈 가족사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아픔이고 통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여순사건이라는 근대사의 격랑 한가운데에서 한 가족을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사위와 딸을 잃고 남은 가족을 지키고 당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길은 오직 침묵과 체념뿐이었다.
사상 思想이, 좌우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올가미에 덧씌워져 죽이고 죽어야 했으니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그걸 따져볼 길조차 없는 무력한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 공포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내 엄마의 슬픈 이야기,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서슴없이 풀어 놓는 이유가 있다. 엄마 역시 격동하던 그 시대의 희생양이었고, 심연에 숨겨진 아픈 응어리를 삭이고, 정서적 위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그리운 들꽃 향기〉부분
그렇다. 작가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온 장본인이다. 해방공간, 한국전쟁, 월남전의 참전까지 직접 온몸으로 겪었다. 해방 전후의 역사적인 체험은 직접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가족을 잃은 부모님으로부터 수없이도 듣고 또 들으며 성장했다. 실제로 눈 내리는 겨울밤 이야기꾼인 큰엄마로부터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은 고달픈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어쩌면 직접 겪은 것, 더욱더 생생하게 학습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버지로부터, 큰어머니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형한테서 겹겹이 듣고 쌓여 가슴속 한으로 쌓였다. 따라서 이 책 속에 나오는 작가의 이야기는 결코 화자만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상흔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도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손가락 총〉〈아부지, 우리 아부지〉〈엄나무 가시〉〈큰엄마〉〈마지막 일기〉〈기억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정글은 말이 없다> 등 작품이 모두 그러하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붉은 완장을 찬 낯선 청년들에게 연행당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곳은 읍내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끌려와 있었다. 곱게 물든 단풍잎이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운동장 가에는 끌려온 이들의 가족과 구경꾼들이 운집해 있었다. 아버지를 뒤따라온 엄마와 작은누나도 그 군중 속에 끼어 가슴 조이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는 ‘손가락 총’이었다. 운동장에 잡혀 온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붉은 완장을 찬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 곧바로 끌려 나갔다. 사람의 손가락이 바로 총구멍이나 다름없었다. 손가락 총을 당한 사람들은 새끼줄에 묶인 채 한 사람씩 교단 앞에 세워졌다. 곧이어 인민재판이 시작되고 간부인 듯한 사람이 호명하면서 죄목을 열거했다.
“이 사람은 인민을 수탈한 인민의 적이요, 처단해야 하오.”
이렇게 운동장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 소리 지르면, 기다렸다는 듯 앞자리에 포진한 몇 사람이 옳소, 옳소, 손들고 손뼉 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처리하는데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고가 모두 끝나면 사람들은 곧바로 굴비 엮듯 묶어져 소화다리(부용교)로 끌려갔다. 소화다리 난간에 일 열로 세워 놓고 발목에 새끼줄을 묶은 뒤 방아쇠만 당기면 다리 밑으로 사라졌다. 다리 아래 갯바닥에는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고, 바닷물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다리 양쪽에 둘러선 가족들의 통곡에 하늘도 슬피 울었다.
-〈손가락 총〉부분
아버지가 그날 인민재판에서 용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매형의 힘이었다. 매형이 반군에 합류할 것을 약속하고 아버지를 살려낸 것이다. 작은 매형은 우리 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작은누나와 눈이 맞아 데릴사위로 살고 있다. 신혼인 매형은 임신한 누나를 두고 산사람들에게 합류할 수가 없어 결국 반동분자로 지목받아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듬해, 어느 봄날 밤 작은 매형이 몸살로 집에 있다가 이웃의 밀고로 산 사람들에게 붙들려갔다. 그들은 매형을 뒷산 잿몬당 소나무 밑으로 끌고 가 인민재판을 열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날 매형은 죽창으로 무참히 처형 되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스물다섯 청년은 그렇게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 전란으로 좌우익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무자비한 총과 폭력 앞에 그냥 망연히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함뿐이었다. 사상이니 이념 따위는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 무자비함의 파고는 죄 없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총이 곧 법이었다. 원한과 복수가 그 총을 무기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누군가의 심장을 구멍 낸 총알은 한참이 지나 총을 쏜 그 자신 심장을 관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뺏고 빼앗기는 아귀다툼 속에서 역사는 돌고 돌았다. 좌우 모두 미쳐 날뛰던 그 시절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죽여야 했던 그들을 누가 단죄할 것인가 하고 작가는 묻고 있다.
아버지와 누나는 매형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산사람들은 양민들을 처형한 뒤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돌무덤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엄마, 누나는 소등처럼 길고 둥그런 능선을 따라 수십 기가 널려 있는 그 많은 돌무덤을 일일이 헤쳐보고 다시 쌓길 무려 열흘 만에 매형의 유골을 찾아냈다. 이미 시신은 육탈 된 뒤였지만 옷가지와 금니 두 개의 흔적으로 찾아낼 수가 있었다. 작은누나는 남편의 시신을 찾은 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이상해졌다. 걸핏하면 남편이 최후를 마친 잿몬당 소나무 아래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기 일쑤였다. 별의별 좋다는 약은 다 써 보고, 신랑의 원혼이 씌웠다고 씻김굿까지 해도 차도가 없었다. 삼 년여를 그렇게 앓던 누나는 스물넷 젊은 나이에 어린 딸을 남겨두고 기어이 남편 곁으로 가고 말았다.
1948년 여수 순천 십일구 사건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피눈물 나는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이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맞이하고도 살아야만 했던 인간이 삶이 참혹하도록 슬프기만 하다. 그 어떤 사실적인 소설작품보다도 더 생생한 묘사력에도 또 한 번 놀란다. 나는 여순사건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이 수필의 문학 사적의의는 실로 큰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을 한번 보자.
①큰엄마는 늘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 사는 가냘픈 여인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큰엄마의 마음을 모른 척하면서 겉돌기만 했다. 아버지는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작은 집에 가기 위해 슬그머니 대문을 나섰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큰엄마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밤마다 홀로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술이 떨어지면 주전자를 들고 주막으로 튀는 건 나였다. 큰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병석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이셨다.
“배고픈 시절에 애미 젖 떨어지고, 사람 되기 힘들 거라 생각 혔는디…. 살아줘서 고맙다. 쯧쯧, 넌 명줄이 길 거여. 니 엄마한테 잘해라.”
당신이 먼 길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울컥 설움이 솟구쳐 나도 모르게 큰엄마를 얼싸안고 흐느꼈다.
“엄마!”
-〈큰 엄마〉 부분
②엄마는 스물둘 한창나이에 마흔이 넘은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딸 둘에 외아들을 두었지요. 다시 외아들로 대를 이어 갈 일을 염려한 아버지는 큰엄마의 도움으로 청상(靑孀)인 엄마를 중매로 만났다고 합니다. 엄마는 해방 이듬해인 유월 초하룻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습니다. 두이레가 못되 엄마 젖이 말라 배고파 우는 아기를 두고 볼 수 없었든 아버지는 손수 생쌀을 씹어 화롯불에 끓여 먹였다고 합니다. 그 일로 아버지는 치아를 상해 말년에 위장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엄마의 가슴에는 아픈 멍울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아픔을 아들에게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엄마가 열일곱에 결혼했고, 남편이 일제에 징집당해 남양군도에서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큰엄마를 통해 어슴푸레 들은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을 키우면서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더 낳기 소원했습니다. 음력 팔월 대보름날 밤이면 날 데리고 처낙골 곰 바위 밑에서 간단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손을 머리에 얹고 쉼 없이 절을 했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 더 낳게 해주시라고, 그러면서 하나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른 새벽 장독에 정화수를 올리고 쉼 없이 기도했습니다.
-〈엄나무가시〉 부분
작가에게는 어머니는 두 분이다. 그렇게 된 사연은 이렇다. 아버지는 손이 귀한 집안의 4대 독자다. 그 시절에는 집안의 대통을 잇는 일만큼 큰일은 없었다. 아버지 나이 마흔을 넘겨서도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5대째 독자로 대를 잇게 되는가 싶어 시름이 깊었다. 또 한명의 아들을 얻기 위하여 화자의 아버지는 해방이 되던 해 두 번째 장가를 갔다. 이때 중요한 점은 큰 엄마의 도움으로 스물둘 청상과부인 어머니를 만났다는 점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죄는 인간의 본성인 질투심마저도 삼켜버릴 정도이다. 그 이듬해 음력 유월 초하룻날, 보리 까실이 한창일 때 바라던 아들을 얻었다. 화자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큰엄마가 아기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금줄에는 빨간 고추를 매달았음은 물론이다. 화자가 태어난 지 2주가 막 지날 무렵 엄마 젖이 거짓말처럼 말라버렸다. 아기 분유가 없는 시절이라 큰엄마는 배고파 우는 아기를 안고 동네 산모가 있는 집을 찾아다니면서 동냥젖을 얻어 먹이고, 밤이면 생쌀을 갈아 화롯불에 끓여 먹였다. 설상가상으로 동네에 홍역이 퍼져 어린아이들이 죽어 나갔다. 동냥젖마저도 얻어 먹일 수가 없게 되었다. 큰엄마는 몇 개월이 지난 후 아슬아슬하게 죽을 고비를 넘긴 비쩍 마른 아이가 옹알이한 것을 보고 살아있다는 기쁨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 사시는 수양아버지는 사주를 풀어보고 오행에 수(水) 즉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 항렬 규(圭)자에 수(水)를 넣어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분명 그런 시대였다.
작품①은 큰엄마의 이야기다. 낳아준 엄마보다 더 살뜰한 정을 주신 분이 큰엄마다. 배고파 우는 화자를 안고 골목을 헤매던 그 사랑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화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분에게 한 번도 효도다운 효도를 해본 적이 없으니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고 한다. 어려서 엄마에게 가면 큰엄마에게서 멀어졌고, 큰엄마에게 가면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두 여인 사이엔 화자가 있었다. 화자는 둘을 잇는 끈이면서 동시에 둘 사이의 벽이었다. 이러한 남과 다른 정체에 눈을 뜨게 한 이는 언제나 큰엄마였다. 가족 묘소에 두 분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 큰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엄마는 그 곁에 홀로 영면에 드셨다.
작품②는 친엄마 얘기다. 화자는 동네에서 개구쟁이로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니놈 보고 사는 이 에미는 어쩌라고 속을 썩이냐.”하시면서 회초리를 들었다. 논과 밭농사 일은 전적으로 엄마 몫이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종일 일하고 저녁 무렵에 돌아오시면 잠자리에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셔서 끙끙 앓으셨다. 가끔은 엄마가 뒷골방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울고 계셨다. 철없는 아들은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광만 부리다가 먼 길 떠나신 뒤에야 엄마 가슴 속에 품고 살아 온 한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한은 무엇이었을까. 일제치하에서 가난한 소녀시절을 보냈고, 첫 남편을 태평양 전쟁에서 잃고, 재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견뎌낸 삶은 엄나무가시처럼 언제나 아파서 한으로 쌓였을 것이다. 평생 소용돌이치는 여울목을 억척스레 건너온 엄마의 인생을 화자역시 망팔(望八)이 되어서야 일부나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표제작〈무진으로 가는 길〉을 살펴볼 차례다.
방죽을 걷는다. 『무진기행』 주인공 윤희중과 하인숙이 걸었던 그 길이다. 두 사람이 정을 나누던 방이 있고, 20여 년 전만 해도 산장을 하던 그 집은 헐리고 없다. 여름밤, 집 앞 논에서 마치 조개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듯한 개구리 울음소리, 하늘을 쳐다보면 셀 수없이 많은 별 남쪽으로 흐르는 별똥별들도 이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 같다던 안개, 무진의 명산물인 그 안개도 가뭇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늦가을 석양빛을 등지고 서서 표표히 흔들리는 갈대꽃의 담백한 광휘(光輝)를 보면 여한 없는 한 생애의 마지막 빛남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진으로 가는 길〉 부분
김승옥의 소설에서 유추한 이 작품은 동천 물길과 순천만 국가공원, 둑길을 지나 순천만 갈대밭을 아우른다. 순천만이라는 공간 사이사이에 유년의 추억과 문학작품이 등장한다. 실재하는 현실공간과 화자의 상상이 길항하면서 뿜어내는 서정성과 긴장감이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작가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다가 안개 자욱한 방죽을 걷고 싶은 충동을 느껴 집을 나선다. 동천부터 순천만 갈대밭 방죽까지 걸을 작정이었다. 그 길 따라 걷는 시간은 지금까지 걸어온 작가 안규수의 길이다. 작가는 순천만 정원을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지만, 그가 걷는 길은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어쩌면 김승옥의〈무진기행〉과 안규수의〈무진으로 가는 길〉은 한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안개는 혼돈과 비밀, 신비스러움을 상징한다. 작가는“무진의 명산물인 그 안개도 가뭇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늦가을 석양빛을 등지고 서서 표표히 흔들리는 갈대꽃의 담백한 광휘光輝를 보면 여한 없는 생애의 마지막 빛남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설파한다. 이는 안개 속을 벗어난 작가의 현실을 의미한다. “나는 자유도 행복도 갈구하지 않고 비움의 삶을 살기로 한다. 어느덧 억압에서 벗어난 나는, 이 순간이 족하다.”이는 모든 욕망 내려놓고 민들레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는 그의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안규수는 출생부터가 선친 세대의 정신적인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여순사건과 6.25동란, 월남전 파병 등의 국가적 사건을 몸소 체험했다. 이렇듯《무진으로 가는 길》은 작가의 현실적 삶을 형상화했다. 결국 이 작품은 신경림 시인의‘갈대’한 구절처럼 “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다만 흔들릴 뿐이다. 나는 보았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울고 있다는 것임을.”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가 자유라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화자는 자유도 행복도 갈구하지 않고 비움의 역설로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며 만족함을 얻는 순간이다.
3. 사유의 깊이와 통찰의 문체
화자는 1960년대 월남전에 직접 참전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어찌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있겠는가.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서 회자될 것이다. 작가는 60년도 더 지난 어느 봄날, 그 전쟁의 현장을 방문하고 소회의 작품을 남겼다.
이태 전 봄 아들이 거주하는 베트남 호찌민시를 방문했다. 이튿날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중략) 박물관 전시실에는 반세기도 넘은 전쟁의 상처가 시간이 정지된 채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사진의 가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내는 데에 있다. 네이팜탄에 검게 타버린 시체, 고엽제로 인해 사산된 태아를 포르말린에 넣어 보존한 병,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 베트남에 뿌려진 포탄과 실탄의 수, 그들이 ‘더러운 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군인이 투입되고 죽었는지, 그로 인해 베트남이 얼마나 초토화되었고, 얼마나 많은 베트남인이 죽고,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가 파병한 한국군이 작전 중 학살한 민간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수십 구의 민간인 시체가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총을 들지 않은 사람을 쏜다는 건 이미 전쟁이 아니다. 그건 살인이다. 전쟁의 목적과 경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기억되어야 할 죽음과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는 미국인 관람객 가운데에는 초라한 내 모습도 있었다.
-〈기억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부분
화자는 근 1년 동안 전투에 참여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전쟁터, 조금 전까지 C레이션을 같이 먹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고, 어젯밤에 어머니와 애인이 그리워 눈물을 훔치던 친구가 포탄에 맞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현장에서 휴머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베트콩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으로 아군을 괴롭혔다. 뚜렷한 전선도 없고,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1968년 가을에는 인근 중대에서 야간 매복 작전으로 30여 명에 가까운 베트콩을 사살한 전과가 있었다. 날이 밝아 사상자를 수습하고 보니 인근 마을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작전 중에는 미군 수송기가 뿌연 안개 같은 것을 살포했다. 그것은 인체에 치명적인 고엽제라는 화학물질이었다. 화자는 30대 중반부터 고엽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3년 전 당뇨합병증으로 뇌경색이 발병했다. 국가유공자가 되고 고엽제 피해자로 분류되어 정부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이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국가는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화자의 어머니는 매월 꼬박꼬박 보내 준 돈으로 문전옥답 서 마지기를 장만하여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었다.
작가는 묻는다. 그동안 참전용사로서 지켜온 자부심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피해는 모두 누구의 잘못인가. 너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느냐. 문제는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해석의 시각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쟁을‘경제발전의 계기’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학살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전쟁을 치루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거대한 명분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은 그 모든 명분마저 희미해질 뿐이다. 정부의 참전명분은 우방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도미노 현상으로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전쟁을 통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진실은 어떠한 명분에도,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뿐더러 정당화될 수 없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묻고 있다. 이러한 사유는 어떤 전쟁평론가 보다도 그 어떠한 역사학자보다도 예리한 시각으로 전쟁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승화시키고 있는 점이다. 안규수의 수필을 논할 때 그의 장엄하고 서정적인 문체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흰 구름이 징광산 높은 재를 넘기 힘들어 파란 하늘 끝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 형은 저수지 둑에 앉아 그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산그늘이 길게 만들어졌다. 마흔한 살, 덧없는 인생의 깊은 시간이 개울물 흘러내리듯이 그렇게 하릴없이 흘러왔을 뿐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며칠째 오후 한나절을 저렇게 앉아 나무와 바람, 저수지 물결 등 허무가 빚어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한 인간이 이생에서 마지막이 몸부림이었다. 그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절한 광경이었다. 조용히 어둠이 내려앉자 하늘의 별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중략) 소슬바람이 분다. 섬돌 밑에서 밤을 새워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구슬프다. 바람이 문풍지를 울릴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 소리에 달빛이 서럽게 흐르는 밤, 형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갔다.
-〈마지막 일기〉 부분
암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흔한 살 배다른 형에 대한 묘사다. 형은 딸만 내리 셋을 두고 얻은 5대 독자의 귀한 아들이다. 혼사가 정해졌을 때 형은 이 나이에 장가는 무슨 장가냐고 울고불고하더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기차 굴 앞 친구 집에서 간신히 형을 찾아내 혼사를 치를 수 있었다. 장가가기 싫어서 잔뜩 부어 있는 형과 달리 화자는 형 가마 옆에 바짝 붙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따라갔다. 그때 형 나이 17세,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웃 마을 세 살 위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런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은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절한 형극의 길이건만 이처럼 섬세하고 통찰의 문체로 묘사해 내고 있다. 이러한 격조 높은 문장이야말로 형의 죽음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며 장엄한 숭고미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문체는 안규수 수필의 전편을 관통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상에서 안규수의 작품집과 작품세계에 대하여 개관해 보았다. 20세기 후반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는 전남 보성 출생으로 벌교중학교와 벌교상고를 졸업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했고 농협으로 직장을 옮겨 평생 일했다. 퇴직 후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 4년 간 수강한 그는 2010년, 격월간 《에세이스트》로 등단해 에세이스트 전라지회장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온 장본인이다. 해방공간, 한국전쟁, 월남전의 참전까지 직접 온몸으로 겪었다. 해방 전후의 역사적인 체험은 직접 하지 못했다하더라도 그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가족을 잃은 부모님으로부터 수없이도 듣고 또 들으며 성장했다. 그의 삶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규수의 작품은 충분히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 보편성이 감동으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안규수의 이번 작품집 속에는 일흔 생애를 고단하게 살아온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픈 가족사, 아내와 손자를 향한 애틋함, 산행의 감동과 자연회귀 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여순사건이라는 근대사의 한가운데에서 딸과 사위를 잃고 가족과 당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문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마음깊이 숨겨진 아픈 응어리를 삭이고 녹여낸 수필의 진수가 펼쳐진다. 특별히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체가 안규수 수필의 압권이다. 이러한 격조 높은 문장이야말로 죽음마저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며 장엄한 숭고미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문체는 안규수 수필의 전편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우리시대 좋은 작가의 자리를 확보한 것이다.
*백남오: 2004년《서정시학》수필, 2015년《수필과 비평》 평론등단. 수필 「겨울밤 세석에서」전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 2014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공동저자. 수필집『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등 4권, 수필선집『겨울 밤 세석에서』제2회 수필미학문학상. 제13회 김우종문학상, 제5회 시대의에세이스트상 수상. 경남대수필교실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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