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삶의 기록, 연륜의 힘
- 안규수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 장 병 호 I 안규수의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소소담담, 2021)을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 놀라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의 깔끔하고 안정감 있는 필력이다. 대개 첫 작품집에서는 설익은 부분이 눈에 띄기 마련인데, 안규수의 글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사물에 대한 정밀한 묘사나 명료한 내면 심리의 토로 등 글을 부리는 능란한 솜씨가 지극히 경이롭다. 문단 경력이 고작 십 년 남짓한 작가가 이 정도로 정제된 수준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문장수련을 해왔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그가 나와 같은 고장에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서른 해가 넘는 기간을 순천에서 수필을 써왔는데, 안규수 작가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중앙문단 위주로 활동해온 데에도 까닭이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출중한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니 나의 과문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늦었지만 안작가가 무게감 있는 수필집과 함께 순천의 문인들과 낯을 익히게 된 점을 반갑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 고장의 수필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II 안규수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의 오늘날까지 살아온 과정이 잘 담겨 있다. 고향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이야기, 부모 형제 및 아내와 자녀들의 이야기, 직장생활 이야기와 퇴직 후의 취미활동까지 다양한 사연들을 갈무리하고 있다. 이를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하면 한 편의 자서전으로도 읽힐 수도 있을 만큼 그의 수필에는 여태껏 살아온 삶의 조각들이 두루 소개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이야기는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겠는데, 하나는 꽃과 산에 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고향과 가족의 추억이며, 다른 하나는 여행을 다녀온 기록이다. 여기서는 이 세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1. 자연 애호의 취향 안규수는 꽃이나 산과 같은 자연에 대한 취향이 남다르다. 먼저 꽃에 관심이 많아 꽃에 관한 수필을 여러 편 썼으며, 이 글들을 수필집 첫머리에 배치해놓고 있다. <작은 꽃이 아름답다>에서는 서양 민들레와는 다른 토종민들레의 생태적 특징을 이야기하며 “내 인생이 저 막은 민들레처럼 소담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자기 소망을 드러낸다. <한 송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에서는 눈곱만큼 작은 냉이꽃을 보며 바지락을 넣어 끓여주던 엄마의 냉잇국을 떠올리며, “냉이나 민들레가 땅에 바짝 붙어 한겨울 칼바람을 이겨낸 끝에 쬐는 햇볕 한 줌은 얼마나 반가운가.”하고 찬탄하고 있다. <호야꽃>에서는 버려진 화분에 있는 다육식물을 집에 가져와 애지중지 살려내 3년 만에 꽃을 피워내고는 “아끼고 사랑해준 만큼 기쁨을 주는 호야, 거기서 얻어지는 소소한 행복은 어떠한 가치로도 바꿀 수 없다.”라고 술회한다. 그는 오늘날 도시 개발에 따른 자연 파괴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 아파트 건설로 숲이 없어지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 때문에 자연이 망가지면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생각만 해도 섬뜩합니다. 자연의 소리가 아닌 인위적인 소리는 사람들을 귀머거리로 만드나 봅니다. 도시의 시끌벅적한 소음공해는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차단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연의 소리를 상실한 사람들은 청력의 부재, 곧 소통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 <새벽닭 우는 소리> 도시의 소음공해가 자연의 소리를 빼앗고 그것은 인간은 소통의 부재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문명은 축복만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안규수는 또 산을 좋아한다. 일찍이 설악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완주할 만큼 산행에 심취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조계산과 지리산, 한라산을 즐겨 오른다. <선암사처럼 늙어라>에서는 조계산에 오르고, <작은 꽃이 아름답다>와 <지리산, 홀로 걷는 길>에서는 “외롭지만 수많은 상념이 동행해주어 좋다.”라고 하며 지리산에 오르며, <겨울산은 잠들지 않는다>와 <찬란한 설봉을 향하여>에서는 “겨울이 간직한 침묵의 소리를 듣기 위해” 눈길을 뚫고 한라산을 등정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처럼 산을 좋아하는 안작가야말로 어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산을 이렇게 대한다. 산은 결코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육체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면서 정신적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은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충만감을 느끼기도 하고, 극한 환경에서 마주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통해 깨달음과 성찰을 얻기도 한다. 등산은 육체적 행위이지만 내면적으로 사색적인 측면도 강한 이유가 여기 있다. - <산이 거기 있기에> 그는 산행을 통해 육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내적인 충만감을 느끼고 깨달음과 성찰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생애를 살아오면서 용서할 수 없는 응어리도, 욕망도, 버릴 수 없었던 아집도, 저 장엄한 산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허상”임을 깨닫는 그에게 산은 단순한 취미활동의 장소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교감을 통해 정신적 성숙에 이르는 배움의 장임을 알 수 있다. 2. 고향과 가족의 추억 안규수는 고향의 추억을 즐겨 이야기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벌교의 산골이다. 고향의 추억에는 자연스레 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유년의 뜰>에는 어린 시절 벗들과 함께 산과 들을 쏘다니며 참꽃과 버들강아지, 찔레꽃, 띠순, 송기 따위를 먹던 일을 술회하면서 “갈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고백한다. <대꽃 피는 마을>에서는 적막한 고향마을에 가서 어린 시절 대밭에서 벗들과 놀던 일을 떠올리며, “눈 내리던 밤, 호롱불 아래서 동화책을 읽으며 꿈을 꾸던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하고 그리워한다. <둥구나무>에서는 고향마을을 지키는 노거수를 바라보며 “이 나무 밑에서 코 흘리며 뒹굴던 소꿉동무 얼굴들이 시간이 정지된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라고 생각하며 추억에 잠긴다. 이밖에도 첫사랑 소녀와의 애틋한 사연을 고백한 <순이>와 중학생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쓰라림을 털어놓은 <마음이 흘러온 흔적들>, 고등학생 때 교회를 찾은 뒤로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고백> 등도 진솔한 추억담으로서 인상 깊은 작품이다. 그는 가끔 고향 집에 찾아간다. 옛집으로 들어섰다. 가끔 들러 잡초를 뽑고 청소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라 세월에 바래고 비바람에 씻겨 퇴락해 간다. 그래도 뒤란 울타리 대나무에 바람이 일고 댓잎이 일렁인 것을 보니 날 반기는 것 같다. 어느새 날이 개어 햇볕이 내리쬔다. 저 따사로운 햇살…. 어머니의 품에 든 듯 안온하다. - <대꽃 피는 마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원초적인 장소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래서 회귀본능을 지닌 연어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품고 산다. 안규수도 비록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지만 고향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한 느낌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안규수의 수필에는 가족에 관한 추억담도 여러 편이다. <엄나무 가시>와 <큰엄마>는 두 어머니를 갖게 된 가족사와 더불어 작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던 두 분에 대한 추모의 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신혼 시절의 이야기 <첫날밤>과 부부가 함께 극장을 찾는 <비긴어게인>, 아내의 암 수술을 다룬 <박꽃>에서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이런 고백>에서는 학생운동을 하던 아들에 대한 몰이해를 뉘우치고 있고, <힘내라 강아지>와 <훈련>에서는 외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부지, 우리 아부지>는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를 여읜 사연이고, <마지막 일기>에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가족 이야기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사연으로 1948년 여순 10.19의 비극을 다룬 <손가락 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당시 작가의 부친과 매형 가족이 화를 당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는 ‘손가락 총’이었다. 운동장에 잡혀 온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붉은 완장을 찬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 곧바로 끌려나갔다. 사람의 손가락이 바로 총구멍이나 다름없었다. 손가락 총을 당한 사람들은 새끼줄에 묶인 채 한 사람씩 교단 앞에 세워졌다. 곧이어 인민재판이 시작되고 간부인 듯한 사람이 호명하면서 죄목을 열거했다. “이 사람은 인민을 수탈한 인민의 적이오. 처단해야 하오.” 이렇게 운동장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 소리 지르면, 기다렸다는 듯 앞자리에 포진한 몇 사람이 “옳소, 옳소” 하며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처단하는 데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손가락 총> 이때 부친은 인민재판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다가 천만다행으로 풀려났으나 매형은 무참히 희생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을 잃은 비통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누나까지도 뒤따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혼란스러운 이념 갈등의 시대에 좌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선량한 민초들이 겪은 참담한 사연이 읽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놈(남) 탓할 것 없어. 모두 내탓이제.”라는 말과 “놈한테 신세 지지 말고, 척(원수)지지 말어.”라는 말을 되내며 ‘침묵과 체념’으로 살았던 부친을 가리켜 작가는 “나의 아버지인 동시에 힘없고 이름 없는 민중의 다른 이름이었다.”라고 술회한다. 이 <손가락 총>이야말로 수필로 쓴 민중사이자 시대의 증언으로 꼽을 수 있다. 3. 다채로운 여행담 안규수는 여행을 좋아한다. <금둔사>에서는 절에 가서 홍매 구경과 더불어 주지 스님에게 차를 얻어 마시고, <선암사처럼 늙어라>에서는 고색창연한 절의 곳곳을 살피면서 “고희를 넘긴 내 모습이 과연 이 절처럼 곱게 늙고 있는가”하고 자문한다. <그게 어떻게 생긴 긴데>에서는 남해 다랑이마을에 가서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 <신선이 머무는 방선문>에서는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 산신령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면 불가능한 비경”에 감탄하는가 하면, <이어도사나>에서는 제주도 풍광을 사진기에 담으며 살았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소개한다. 안규수의 기행수필 가운데서 특히 <새벽닭 우는 소리>와 <무진으로 가는 길>는 순천의 자랑인 순천만에 관한 내용이어서 친근감이 앞선다. 작가는 순천문학관에 여러 차례 찾아갔으나 김승옥 작가를 만나지 못하고, 대신 <무진기행>의 남녀가 걸었던 방죽길로 향한다. 방죽을 걷는다. <무진기행> 주인공 윤희중과 하인숙이 걸었던 그 길이다. 두 사람이 정을 나누던 방이 있고, 20여 년 전만 해도 산장을 하던 그 집은 헐리고 없다. 여름밤, 집 앞 논에서 마치 조개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듯한 개구리 울음소리, 하늘을 쳐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별, 남쪽으로 흐르는 별똥별들도 이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 같다던 안개, 무진의 명산물인 안개도 가뭇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 <무진으로 가는 길> 순천만 방죽길을 걸으며 이제 관광지로 바뀐 순천만에서 소설에 나오는 옛 풍경을 찾아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김승옥 소설에 심취한 바 있는 작가이기에 순천만 갈대밭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규수는 베트남 호찌민과 뚜이호아에도 여행을 간다. 그리고 자연스레 과거 군 복무 시절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기억을 소환해낸다. 그는 1968년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렀다. <기억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와 <정글은 말이 없다>는 베트남전에서 총을 들고 싸웠던 생생한 기록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전쟁터, 조금 전까지 시레이션을 같이 먹던 전우가 총에 맞아 죽고, 어젯밤에 어머니와 애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포탄에 맞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현장에서 휴머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투 중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인간으로서 이성을 상실한다. 오직 적개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기억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겠는가. 안규수는 포연 속에서 삶과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였기에 세상을 보는 눈이 웅숭깊고 글의 내용이 풍성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베트남전 참전기는 여순 10.19를 그린 <손가락총>과 더불어 안규수 수필의 큰 성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III 일찍이 피천득은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고 하였다. 안규수의 수필을 읽어보면 그 말이 수긍이 간다. 생기발랄하고 재치가 넘치는 젊은이의 글도 나름대로 읽는 맛이 있겠지만 인생을 통찰할 만한 장년의 글이야말로 사색과 경륜이 녹아 있기에 수필의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안규수의 수필은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문장과 함께 진솔한 삶의 경험과 사유가 채색되어 있는 점에서 연륜의 힘이 느껴진다. 글 속에 스며 있는 진실성과 연륜의 힘은 오래 묵힌 장맛과 같이 독자에게 그윽한 울림과 여운을 준다. 안규수 수필은 차분하고 정적이다. 섣불리 자기주장을 내세우지도 않고 누구를 탓하거나 증오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현란한 수사라든지 과도한 감정의 분출이라든지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토로 같은 것이 아예 없다. 오로지 자기의 평소 생각을 가까운 벗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듯 차분하고 담백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뿐이다. 그의 글은 고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민들레꽃처럼 여린 듯하면서도 끈질기고,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굳세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듯하면서도 장작불 같은 뜨거움이 서려 있다. 이른바 외유내강의 풍모를 지닌 선비의 정신을 닮았다. 평생 헛된 욕심에 눈을 돌리는 법이 없이 분수를 지키며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의 글이기에 독자들은 아무런 부담이 없이 그가 펼치는 이야기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안규수는 어느 날 갑자기 수필집 『무진으로 가는 길』 한 권을 들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있다가 이제 왔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경이감과 반가움이 앞선다. 늦은 만큼 많은 것을 축적했을 터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보석과 같은 글을 선물해줄 것을 믿고 기대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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