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꽃
안규수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섰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주봉 가운데 하나이다. 장엄한 지리산 연봉은 짙은 연무에 숨어 그 장관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노고단은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 설화 등 계절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고 옛날 지리산 신령인 산신 할머니(老姑)를 모시는 곳(檀)이라 불리고, 맑은 날에는 저 멀리 최고봉인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자락 천은사 도계암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성삼재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성삼재는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불리던 이름이라고 한다. 건너편 반야봉이 안갯속에 누워 잠자는 듯 보였다.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고개에 이르니 가슴이 확 트였다. 천왕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고개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약 400m 정도의 거리이다. 오르는 길 양옆 숲에는 붉은 말나리꽃 산수국 일월비비추 동자꽃이 피어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정상이 가까울수록 정작 우릴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할 원추리꽃이 보이지 않았다. 웬일일까?
노고단 정상 부근은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크게 실망했다. 마땅히 활짝 피어 있어야 할 원추리꽃이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다소 늦은 8월 중순쯤 이곳에 올랐을 때도 듬성듬성 피어 있었던 꽃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노랑원추리는 잎만 무성하고 꽃대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의 의견이 분분했다. 극심했던 봄 가뭄 때문일까? 아니면 기후 온난화 때문이 아닐까? 원추리는 해발 천 미터 이상 고지대에 자생하는 식물이므로 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오늘 산행 목적은 원추리꽃이다.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원추리는 오랜 옛날부터 가난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온 꽃이다. 조선 시대 사전인 <물명고(物名考)>에는 ‘원쵸리’라 하고 중국명인 ‘훤초(萱草)’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훤초(萱草)’는 ‘근심을 잊게 한다.’라는 뜻의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도 원추리를 나물로 무쳐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사용되었다. 7~8월에 꽃줄기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 백합 비슷하게 생긴 6~8개의 등황색 꽃이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밥은 노란빛을 띠는 선형이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며 계속 다른 꽃이 달린다.
원추리는 재미있는 이름이 많다. 지난해 나온 잎이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어 마치 어린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와 같다 하여 모예초라고도 하며, 임신한 부인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의남초, 사슴이 먹는 해독초라하여 녹총, 근심을 잊게 한다고 하여 망우초라고도 한다. 또한 예전에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훤당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훤'은 원추리를 뜻하며 당시 풍습에 어머니가 거처하는 집의 뜰에 원추리를 심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수년 전 일이다. 어느 여름날 노고단에서 처음 본 원추리꽃의 아름다운 모습은 가히 황홀경이었다. 여름이면 뒤란 그늘에 주황빛 꽃을 곱게 피우던 봉선화며 백일홍처럼 언니의 꽃으로 새겨져 있는 원추리꽃을 볼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매년 비지땀을 흘리며 올랐던 노고단이 아니었든가.
원추리의 수난은 이곳뿐만 아니다. 지난해 여름 덕유산을 찾았을 때 중봉 평전에 군락을 이루고 있던 원추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일대에 원추리꽃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원추리 개체가 영영 사라지고 없어 허망했다.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 내려오는 길은 에움길을 택했다. 에움길은 지름길을 피해 빙 둘러서 돌아가는 먼 길이다. 정상에서 성삼재까지 4.2km의 에움길을 일행과 떨어져서 홀로 걸었다. 8월의 숲은 짙은 초록으로 싱그럽다. 산은 고요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은 아이처럼 맑다. 울창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신선한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원추리꽃이 보이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서 국립공원 관리사무실에 들러 물었다.
“노고단 원추리꽃이 왜 보이지 않습니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이 일대에 서식하는 노루 때문이란다. 노루가 연한 꽃대를 잘라 먹어 꽃이 없다니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다. 앞으로 노루 개체 수는 늘어 날 것이니 영영 수려한 원추리꽃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자연은 춘하추동 사계절 끊임없이 순환한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때가 되면 그렇게 어둠 속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그렇긴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공원 관리원에게 따지듯 물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원추리꽃을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걸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입니까?”
대답을 듣고 보니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여름이면 고향의 옛집 장독대 옆에 피어나는 봉선화. 누나는 그 봉선화 꽃잎을 따서 손톱을 예쁘게 물들이고 내 손톱도 물들여줬다. 밤이면 짙푸른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평상에서 모깃불을 피우고 듣던 엄마의 구수한 구전설화, 그 낭만적인 여름은 영원히 사라져간 옛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 노고단 원추리꽃이 우리 곁을 떠났다. 머지않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것이다. 나는, 삶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산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거친 산맥을 넘어가는 구름도, 바람결에 춤추듯 너울거리는 나무도, 길가에 홀로 핀 동자꽃도 눈물겹도록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