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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

매혹의 순간들

by 안규수 2023. 2. 21.

                                                              매혹의 순간들

                                                                                                               안규수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나인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린 시절 유난히 여리고 몸이 허약했다. 나의 젊은 시절은 일탈과 모험보다는 인내와 타협을 미덕으로 알고 편협하고 고정된 관념 속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장차 무엇이 되겠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이 정처 없이 안개 속에서 헤맨 시간이었다.

  군에 입대해서 월남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해 공무원 생활 3년쯤 하다 농협으로 전직하여 평생을 고향에서 농사짓는 농민들 곁에서 일하다 정년 퇴임했다. 그때까지 고향 농민들 앞에서 잘살아보자고 외치고 다닌 것은 입에 달린 말일 뿐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생활의 방편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진달래가 피고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는 시골에서 나는 자랐다. 자연의 변화가 가장 큰 볼거리였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면어릴 적 동심에 젖어 눈시울을 적신다.

여름은 무더웠다. 여름은 집으로부터 떠나 풍성한 낭만을 느끼게 한다. 무더운 여름이 낭만적인 자유를 느끼게 하는 것은 불타듯 작열하는 태양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을 앞 개울에서 목욕하고 들로 산으로 싸 돌아다니면서 마음껏 놀 수 있어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바람의 흔적은 나뭇가지에서 발견된다. 바람은 나무에 끊임없이 주문한다. 흔들려야 산다고. 흔들리는 나무는 파릇파릇한 잎들 모두 떨어뜨리고 헐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을 견딜 줄 안다. 흔들리지 않은 인생은 없다.

  무엇이 나를 이끄는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내게 되살아나는가. 그건 아버지의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서 감내한 고난의 삶이었다. 내 인생이 궁극의 흔들림 속에서 우여곡절을 스스로 감내할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였다. 나는 삶이 고단하고 답답하면 고향을 찾는다. 고향 가는 길은 항상 정직한 길이다. 조상들의 기침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하고 태어난 태 자리가 아직도 선연善緣 하기 때문이다. 마을 언저리에는 당산나무가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다. 한여름 천둥을 몇 개씩이나 품었던 나무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동안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 시시포스처럼 평생 굴러떨어진 바위를 들어 올렸는데도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동심의 세계는 아름답다. 먼저 뜨거움이 나를 휘감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동무들 목소리가 진지하고 순수했다. 동무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를 안방에 집어 던지고 산으로 들로 바람난 누렁이처럼 싸돌아다녔다. 숲은 곧 학교였다. 보릿고개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참꽃 송기 등 먹거리가 풍부했다.

  글을 쓰는 일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맡기는 일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글 속에 묻혀 있는 순간이 그랬다. 자신이 걸어온 과거를 소환하여 그 속에 몰입하고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것. 새벽녘 글쓰기에 몰두하다 동쪽 창문에 여명이 밝아오면 환희에 젓는 것, 그것이 바로 매혹인 듯싶다. 이렇듯 나의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매혹 시간이다.

  “글쓰기의 최상은 잘 베끼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남정욱 작가의 것인데,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통찰만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무식한 생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식사회에서는 메모하는 사람이 생존한다는 말이 있다. 연암 박지원은 말 위에서 졸면서도 메모를 놓지 않았다. 그 시대 최고의 기행문 열하일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나의 글쓰기에서 메모는 유용한 자양분이다. ‘잘 베끼는 것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념이 필요하다. 양념은 음식 맛을 좌우할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양념 없는 음식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최근 작고한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에서 작가는 감추고 싶은 욕망, 속마음을 광장으로 끌어내 노출 시키고 깨진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깨진 거울 속의 얼굴을 안 보려고 한다. 작가만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다.”라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처럼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책 속에 묻혀 틈틈이 글을 쓰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누구를 위하여 글을 써야 하는가.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엄마의 슬픈 삶은 평생 나를 괴롭히는 아픈 응어리였다. 깨진 거울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나무 가시라는 엄마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벽을 넘는 순간 나는 정서적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평생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의 거대한 동굴을 탐사하듯 나의 내부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려 한다. 동굴의 길이가 얼마인지, 얼마만큼 더 가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불안도 사라지고 매혹도 없는 일상은 백배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나의 여생,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늘은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매혹에 떨고 불안에 잠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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