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마태복음 15장에는 우리가 알고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과는 너무도 달라서 낯설기까지 한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위선적인 장로들의 전통을 들어 바리새인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이방인 사천여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가나안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여인에 관한 성경의 설명이 길지는 않지만,
이 여인에 관한 성경의 설명이 길지는 않지만,
짧은 몇 구절만 봐도 얼마나 기구하고 불쌍한 인생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여인에게는 귀신 들린 딸이 있었습니다(22절).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
이 여인이 겪었을 고통과 아픔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이 크고 힘겨웠을 것입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행적이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간구에 즉시 응답하셨어야 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딸이 이미 치유함을 받았다” 이런 말씀을 하셔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의외입니다.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한마디로 ‘거절’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유대인들을 배불리 먹이기에도 바쁘다.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한마디로 ‘거절’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유대인들을 배불리 먹이기에도 바쁘다.
가나안 이방 여인의 요청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과연 정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일까 싶을 정도로, 그동안 하신 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내게 오라” 하셨고,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내게 오라” 하셨고,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 같은 이방 여인의 요청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다”라고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결국 그 요청을 들어주시긴 했지만,
마지막에 결국 그 요청을 들어주시긴 했지만,
‘개들’이라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쓰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가나안 여인을 대하여 민망할 정도로 그녀를 무시하신 예수님의 이 낯선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님을 믿으며 사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가나안 여인이 되곤 합니다.
주님을 믿으며 사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종종 가나안 여인이 되곤 합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꾸짖으며 약하고 병든 자들 편에 서신 예수님,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이방인 사천 명을 먹이신 주님이
‘나의 요구와 기도’에는 아무런 답이 없으실 그때 우리는 가나안 여인이 됩니다.
그야말로 ‘주님은 왜?’라는 질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그야말로 ‘주님은 왜?’라는 질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거절 앞에서
가나안 여인의 대답은 놀랍게도 ‘왜?’(Why)가 아닌 ‘예’(Yes)였습니다.
“예, 주님이 옳습니다.”
‘왜’가 아닌 ‘예’라는 여인의 대답이 주님의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퍼즐을 맞춰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 주님이 옳습니다.”
‘왜’가 아닌 ‘예’라는 여인의 대답이 주님의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퍼즐을 맞춰본 적이 있으신가요?
퍼즐 맞추기를 하며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모양의 퍼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동그란 모양을 좋아한다고 해서 동그란 모양의 퍼즐만 모아두면 그림을 완성할 수 없죠.
때로는 세모난 퍼즐, 네모난 퍼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뚤어진 퍼즐, 여기저기 모가 난 퍼즐,
이렇게 다양한 퍼즐들이 모일 때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퍼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바라지만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높습니다.
그러니 때로는 내 손에 든 퍼즐이 마음에 들지 않고 주님의 거절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 주님”, “주님이 옳습니다”라고 주님을 신뢰하며 고백해보면 어떨까요?
내 손에 있는 이 퍼즐, 내게 주어진 이 상황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내 손에 있는 이 퍼즐, 내게 주어진 이 상황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은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혹시 ‘주님은 왜?’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계신다면,
오늘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께 “예”라고 믿음으로 고백해보시기 바랍니다.
- 보통 목사의 10분 성경, 현병찬
- 보통 목사의 10분 성경, 현병찬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사 51: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맥스 러너(Max Lerner)는 세계대전과 여러 내전을 취재하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교육자가 된 러너는 노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교육자가 된 러너는 노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지만 오히려 기쁨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특혜가 주어져도 사용할 줄을 모른다면 기쁨은 누릴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지금까지 알아낸 기쁨의 요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인정의 기쁨입니다.
칭찬과 응원,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는 성취의 기쁨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때 누구나 환희를 느낍니다.
●셋째는 긍정의 기쁨입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특혜가 주어져도 사용할 줄을 모른다면 기쁨은 누릴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지금까지 알아낸 기쁨의 요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인정의 기쁨입니다.
칭찬과 응원,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는 성취의 기쁨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때 누구나 환희를 느낍니다.
●셋째는 긍정의 기쁨입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없는 기쁨은 완전할 수 없을뿐더러 일시적일 뿐입니다.
기쁨의 근원을 아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매일 진정한 기쁨을 누리십시오. 아멘!
주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인정, 성취, 긍정의 기쁨이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다시 명심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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