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읽고 싶은 수필

심생의 사랑 (沈生傳)/ 李 鈺

by 안규수 2023. 6. 21.
심생의 사랑 (沈生傳)/ 李 鈺
안규수추천 0조회 9917.07.24 21:20댓글 2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심생은 서울의 사족士族이다. 약관弱冠(관례를 치르지 않은 젊은 나이)의 나이에 용모가 준수하고 희멀쑥하며 풍정風情이 물씬 풍겼다.
   어느 날 운종가(현재의 종로)에서 상감님의 행차하시는 거동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어떤 힘센 여종이 빨간 비단보자기로 한 처녀를 덮어씌운 채 등에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또 갈래머리를 한 여종 하나가 다홍 비단 운혜雲鞋(구름무늬를 넣은 여자의 신)를 들고 그 뒤를 따르는 게 아닌가.
   보자기 안을 알 수는 없었지만, 보자기 속에 들어 있을 사람 몸의 크기를 바깥에서부터 어림으로 재어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어린 계집아이는 아니었다. 그는 마침내 착 붙어서 놓치지 않고 뒤를 따랐다. 어떤 때는 바로 꽁무니에 붙따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소매로 슬쩍 스치며 지나가곤 했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은 보자기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소광통교小廣通橋에 이르렀다. 그때 별안간 회오리바람이 눈앞에서 일더니, 빨간 보자기가 반쯤 걷혀 올라갔다. 거기, 처녀가 하나 보였다. 복숭아처럼 붉은 빰에, 푸른 눈썹을 버들 모양으로 그렸고, 파란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떨쳐입었으며, 연지와 분단장이 화려하였다. 얼핏 보였을 뿐이지만, 심생은 그녀가 절색임을 알 수 있었다.
   처자處子도 역시 보자기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아름다운 청년을 보았다. 남빛 두루마기에 초립을 쓰고는, 왼켠으로 갔다가 오른켠으로 갔다가 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추파를 쏟아내며, 한 겹 보자기 너머로 보고 있던 참이었다. 순간 보자기가 바람에 걷힌 것이다. 버들 같은 그녀의 두 눈동자와 별 같은 청년의 두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녀는 한 편 놀라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했다. 얼른 보자기를 끌어당겨 여며서 다시 뒤집어썼다. 여종은 그녀를 엎고 그대로 갔다.
   심생이 어찌 그걸 놓치겠는가! 곧장 소공주동小公主洞 홍살문 안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처자는 한 중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심 생은 멍하니,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이 되어, 한참 동안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이웃 할멈을 찾아서 이것저것 자세하게 알아보았다. 그는 그 집이 호조戶曹의 계사計士(회계원)으로 있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사람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계사에게는 오직 딸이 하나 있어, 나이는 열예닐곱이 되었으나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처자의 거처하는 곳을 물었더니, 할멈은 손을 들어 가리킨다.
   “이 작은 골목을 따라가면 흰 칠을 한 담이 있고, 담 안에 협실夾室(곁방) 하나가 있다우. 게가 바로 처자가 거처하는 곳이라오.”
   심생은 그 말을 듣고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저녁나절에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동창생 아무개가 저와 하룻밤을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가 보았으면 합니다.”
   집을 빠져 나온 그는 인경(밤에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소리)이 울리자, 그녀 집의 담을 뛰어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초승달이 옅은 누른빛을 흘리고 있었고, 창 밖에는 꽃들이 제법 아담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등잔불이 지창紙窓에 비추어 몹시 밝았다. 그는 바람벽에 기대고 처마 밑에 비겨 앉아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방 속에는 두 사람의 매향梅香(여종)이 있고, 그녀는 바야흐로 나직한 목소리로 한글소설을 읽고 있었다. 부드러운 그 목소리는 마치 아기 꾀꼬리가 우짖는 듯하였다.
   밤은 깊어 삼경(11~1) 무렵, 여종은 벌써 깊은 잠에 빠졌다. 그제야 처자는 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붙이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있으면서, 몸을 뒤척거리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이 하였다.
   심생은 졸지도 못하려니와, 또한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줄곧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담벼락을 기어올라서 나왔다. 그 뒤부터 그는 늘 그런 식으로, 저물녘에 처자 집으로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한지 벌써 스무 날, 심생은 오히려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처자는 처음에는 혹 소설도 읽고 혹 바느질도 하였다. 한밤중에 이르러 등잔불이 사위여야 잠들었는데, 혹 번민에 시달려 잠들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예니레를 지났을 때 처자는 문득 몸이 편치 않다고 핑계하고는, 초경初更(저녁7~9)인데도 몸을 베게에 던졌다. 그리고 손으로 벽을 마주 치면서 긴 한숨을 내쉬고 짧은 탄식을 하여, 그렇게 탄식하는 소리와 숨결이 창밖까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마다 더욱 심해졌다.
   그런 지 스무 날 째 되는 저녁이었다. 그녀는 홀연 마루로 나와 벽을 따라 돌아서서는, 심 생이 앉아 있는 곳에 이르렀다. 심 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붙잡아 껴안았다.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낭군님은 앞서 소광통교에서 만났던 분이 아니신지요? 전 당신이 이곳에 오신지 이미 스무 날 밤이 지난 줄 안답니다. 제발 붙잡질 마세요. 제가 한 번 소리만 지르면 당신은 이곳을 헤어나질 못할 것입니다. 만일 절 놓아주신다면, 곧 이 문을 열고 맞이하리다. 빨리 놓아 주세요!”
   심생은 그 말을 곧이듣고, 몇 걸음 물러서서 기다렸다. 그녀는 다시금 벽을 따라 돌아가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이른 그녀는 어린 종을 불렀다.
   “넌 마마님 계신 곳에 가서 여쭙고, 주석으로 만든 큰 자물쇠를 갖고 오너라. 밤이 몹시 깜깜하여 두려운 마음이 드는구나.”
   여종은 안채로 가더니만, 얼마 안 되어 자물쇠를 갖고 왔다. 그녀는 마침내 아까 열기로 약속한 뒷문에다 걸쇠를 단단히 꽂았다. 손으로 자물쇠를 확인하였으므로 철거덕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났다. 그리고는 곧 등잔불을 껐다. 그녀는 잠자코 잠이 깊이 든 듯하였으나, 실은 한참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심생은 그녀에게 속은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으나, 역시 한 번 만나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문밖에서 그날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그 이튿날 저녁에도 그는 또 갔으며, 다시 그 다음날 저녁에도 찾아갔다. 문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느슨하게 갖지 않았다. 어쩌다 비라도 내리면 유삼油衫(기름절인 비옷)을 입고 갔으며, 심지어 옷이 젖거나 눅눅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지 이미 열흘이나 되었다. 밤이 깊어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들 달게 잠든 상태였다. 그녀도 역시 등불을 끈 지 오래였다. 그런데 별안간 그녀는 발로 땅을 차듯 다시 벌떡 일어나, 여종을 불러서 불을 붙이라고 재촉하였다.
   “너희들은 오늘밤 안채에 가서 자거라.”
   두 매향이 방문을 나서자, 그녀는 벽에 걸린 열쇠를 끄집어내려, 자물쇠를 열고는 뒷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심생을 불렀다.
   “낭군님, 방으로 드세요.”
   심생은 뜻밖이라 이러저러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몸은 이미 방안에 있었다. 그녀는 다시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심생에게 말했다.
   “낭군님, 잠깐 앉아 기다리셔요.”
   그녀는 안채로 가서 부모를 모시고 왔다. 부모는 심생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녀가 말했다.
 
  “놀라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어 보셔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 난지 열일곱 해가 되었지만 아직 문밖으로 발걸음을 땐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 전에 우연히 상감님 행차를 구경하려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광통교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불어 저를 덮은 보자기가 걷혔고, 초립을 쓴 도련님과 바로 얼굴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도련님은 어느 밤이고 이곳에 오지 않으신 적이 없었지요. 이 문 밑에서 남의 눈을 피하여 기다리신지 벌써 서른 날이어요. 비가 내려도 오시고 날씨가 추워도 오셨답니다. 심지어 문을 굳게 채워 거절하였으나, 역시 그치지 않고 오셨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도록 생각해 보았답니다. 만일 이 소문이 바깥에 알려져 이웃이 알게 된다면, 저녁에 들어와서 새벽에 나갔거늘, 뉘라서 도련님이 홀로 창 바깥에서 벽에 의지하고 있기만 했다고 인정하겠습니까? 이야말로 사실과 다르게 추악한 이름만 덮어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개에게 물린 꿩이 되고 말 것이어요.
   그리고 이분은 애초 양반집 도련님으로서, 바야흐로 청춘의 나이라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못하여, 벌 나비처럼 꽃을 탐낼 줄만 알지, 바람과 이슬의 찬 기운을 돌아보지 않으시니, 어찌 며칠이 안 되어 병이 나시질 않겠습니까? 병이 들면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오니, 그렇다면 그것은 제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실은 제가 죽게 만든 것이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비록 남이 이 일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천벌)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제 몸은 중로中路(중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처녀일뿐더러, 온 성안의 사람을 다 기울이게 할 만한 절세絕世의 미색美色도 아니요, 물고기가 부끄러워 물속으로 들어가고 꽃도 부끄러이 여길 만한 얼굴도 아니거늘, 도련님은 솔개를 보고 매라고 여기시어 제게 이렇게도 지극 정성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도련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늘이 필시 싫어하여 반드시 제게 복이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전 뜻을 이미 정하였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오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아, 저는 어버이께서 늙으시고 동기분이 계시지 않으시므로,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보아 어버이 살아계실 때 극진히 봉양하고 어버이 돌아가신 뒤에는 제사를 받든다면, 저의 바람이 다 채워지리라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일이 홀연 이런 지경에 이르렀군요. 이것은 하늘의 뜻이어요. 더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요?”
 
   그녀의 부모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심생도 역시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마침내 심생은 그녀와 잠자리에 들었다.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연모하던 나머지라, 심생의 기쁨이 어떠하였으랴! 이날 저녁에 처음으로 처자의 방으로 들어간 이후로, 심생은 저물녘 가서 새벽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의 집은 본디 넉넉하였다. 그래서 심생을 위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복을 아주 많이 갖추어 주었다. 하지만 심생은 집의 어른들이 이상하게 여기실까 봐 입지를 못했다. 심생은 비록 깊이 숨겼지만, 그의 가정에선 그가 바깥에서 묵고 밤 깊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의심하였다. 마침내 그의 어른들은 그에게 절간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명하였다. 심생은 마음속에 몹시 불만이 많았지만, 가정의 압력도 있고 또 동무들에게 이끌려서, 책들을 묶어 북한산성에 올라가 선방禪房에 머물렀다.
   그렇게 머문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처자의 한글 편지를 심생에게 전하였다. 겉봉을 떼어 본 즉, 영영 하직을 고하는 글월이었다. 그녀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나고 만 뒤였다.
  그녀가 유서로 남긴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봄추위가 아직 풀리질 않았습니다만, 절간에서 공부하고 계신 귀중하신 몸, 내내 평안하지요? 번번이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니, 어느 때인들 낭군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낭군께서 집을 나오신 뒤에 저는 우연히 병을 얻어 차츰 골수에 스며들어 아무리 약을 써도 조금도 효과가 없으니, 이제는 제 스스로 필경 죽고야 말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처럼 박명한 몸이 비록 산대도 어찌 하겠습니까? 다만 세 가지 한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죽어도 눈을 감지 못 하겠나이다.
   전 애당초 무남독녀로서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장차 데릴사윗감을 찾아서 만년의 부모님께서 의뢰할 바를 정할뿐더러 저의 뒷날의 계획을 마련하려 하였습니다. 그렇거늘 뜻밖에 좋은 일에는 마귀들이 들 끊는다는 옛말처럼 악연惡緣이 뒤얽혀서, 칡덩굴이 외람되이 높은 소나무에 의탁한 꼴이 되었고, 주씨朱氏와 진씨陳氏처럼 타성他姓이 서로 만나 가약을 맺으려는 계획은 이로써 그 희망이 깨어졌습니다. 이래서 저는 늘 기뻐하지 못하고 마음 섭섭해 하다가 종당에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으니, 고당高堂에 계신 학발鶴髮(흰머리)의 두 어버이께서는 아예 영영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게 한 가지 한스러운 일입니다.
   또 여자는 시집가면, 비록 어린 몸종이나 물 긷는 종년이라 할지라도, 문에 기대어 뭇 사내를 기다리는 창녀의 몸이 아니라면, 남편도 있고 그렇게 되면 시부모도 있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는 시부모가 알지 못하는 며느리란 있을 수 없지요. 그렇거늘 저 같은 자는 남에게 속은지 벌써 몇 달이거늘, 낭군 집의 늙은 여종 하나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살아서는 올바르지 못한 행적을 남기고 죽어선 돌아갈 곳이 없는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두 번째 한스러운 일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섬긴다는 것은 음식을 장만해서 올리고, 의복을 지어서 받듦에 지나지 않거늘, 저는 낭군을 만난 뒤로 날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손수 지은 의복이 적음도 아니건만, 낭군님으로 하여금 한 사발밥도 집에서 자시게 하지 못하고 한 가지 옷도 앞에서 입어보시게 하지 못하였고, 그저 낭군님을 침석枕席(잠자리)에서만 모셨을 따름입니다. 이게 세 번째 한스러운 일입니다.
   그 밖에도 슬픈 일이 있지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작스레 영영 이별하고 병들어 누워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얼굴을 마주하여 영결永訣하지를 못하다니요. 하지만 이것은 아녀자의 슬픔일 뿐이니, 어찌 군자에게 말씀 드릴만한 일이겠습니까?
   생각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간장은 벌써 끊어지고 뼈는 당장이라도 녹아들 정도입니다. 약한 풀이 바람에 휩쓸리고 가냘픈 꽃이 진흙이 되었다는 표현으로 비유한다손 치더라도, 길고 아득한 이 원한을 어느 때나 그칠 수 있겠습니까?
  아아, 슬픕니다! 창 앞에서 만나는 일도 이제는 영영 못하게 되었군요. 다만 원컨대 낭군께서는 괘념하지 마시고, 공부에 더욱 힘쓰셔서 청운을 이루도록 하소서. 귀중하신 몸 천만 진중하오소서, 진중 천만하오소서.
 
   심생은 이 유서를 보고서, 저도 모르게 어이어이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떨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과武科를 보아서 벼슬이 금오랑金吾郞(의금부도사, 5)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도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
 
   후기(後記)
   이 소설은 김향남선생의 이옥문학연구논문집 제2부 이옥의 작품연구 첫 작품으로 등장하는 심생전沈生傳(P183~243)을 읽고 적잖게 감동을 받아 원작번역본(심경호 역)을 여기 옮기게 되었다. 그는 논문집 머리말에서,
  "이옥(李 鈺,1760~1815)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다. 고전은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관념에서 머물러 있던 나에게 재기발랄한 그의 문장이 여간 놀랍지가 않았다. 세련된 언어 감각은 물론 세태에 대한 풍자 방법까지 도무지 옛날 사람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의 논문에는 소설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심층 분석하므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고전문학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옥의 문학전집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심경호 옮김, 태학사)을 탐독하고 나서 이옥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양반집 도령과 중인 처녀의 신분상의 문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이 방해 받을 수밖에 없는, 모순된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원본 마지막 논찬부에 해당하는 부분 매화외사는 말한다 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호조 계사 딸의 두려움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교훈적 해석이기에 여기 옮기지 않았다.
   처녀가 한밤에 심생과 부모를 두고 토로한 말과 심생에게 남긴 유서는, 번민하고 갈등하는, 바닥모를 깊이 있는 내면의 여성 존재를 표현한다. 사랑을 이야기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걸작으로 꼽을 만하다.


  
 
댓글2추천해요0

'다시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면 나는/ 신재기  (0) 2023.09.21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0) 2023.06.21
김기림의 짧은 수필 「길」에 관하여  (0) 2022.12.07
겨울의 기침 소리  (0) 2022.11.22
우산  (0)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