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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by 안규수 2023. 6. 21.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안규수추천 0조회 11917.08.08 10:52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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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燕巖 박지원>
 
두 산 틈에서 나온 하수河水는 돌과 부딪쳐 으르렁거린다. 그 솟구치는 파도와 성난 물결과 슬퍼하며 원망하는 여울이 놀라 부딪치고 휘감아 거꾸러지면서 울부짖는 듯, 포효하는 듯, 고함을 내지르는 듯 사뭇 만리장성을 깨뜨릴 기세다. 1만 대의 전차, 1만 명의 기병, 1만문의 대포, 1만개의 전고戰鼓(전투할 때에 치던 북)로도 우르릉 쾅쾅 무너뜨려 짓누르고 압도하는 듯한 물소리를 형용해 내기엔 부족하다. 모래 벌 위 거대한 바위는 한쪽에 우뚝 서 있다. 강둑의 버드나무 숲은 어둑하여 강의 정령精靈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장난을 거는 듯하고, 양옆에선 교룡交龍과 이무기가 사람들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가 옛날 전쟁터인 탓에 강물이 저렇게 우는 거야.”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다.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다. 문 앞에 큰 시내가 있는데, 매번 여름철 큰비가 한 번 지나고 나면 물이 급작스레 불어나 항상 수레와 병거, 대포와 북이 울리는 듯한 굉장한 소리를 듣게 되고 마침내 그것은 귀에 큰 재앙이 되어 버렸다.
내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가만히 이 소리를 비교하여 들은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 숲이 퉁소소리를 내는 듯한 건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건 성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듯한 건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만개의 축(악기이름)이 번갈아 소리를 내는 듯한 건 분노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마구 쳐대는 듯한 건 놀란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찻물이 보글보글 끊는 듯 한건 흥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거문고가 우조羽調(국악에서, 오음의 하나인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조)로 울리는 듯 한건 슬픈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한지를 바른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건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미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귀로 들은 것일 뿐이다.
지금 나는 깊은 밤에 강 하나를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북쪽. , 만리장성의 바깥)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와 조하, 황하와 진천 등의 여러 물과 만난 뒤, 밀운성 밑을 지나 백하가 되었다. 어제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곳은 그 하류 지역이다.
내가 요동에 들어오기 전에 바야흐로 한여름이었다. 뜨거운 태양 속을 가다가 홀연 큰 강이 앞에 닥치면 붉은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천 리 밖에서 폭우가 쏟아진 때문이라 했다. 물을 건널 때면,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쳐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머리를 들고 묵묵히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용돌이치면서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노라면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하고 눈은 물결을 따라 내려가는 듯 아찔하여 금방이라도 물에 빠질 것처럼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러니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건,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아예 물을 피하여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것이다. 하긴, 그 와중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이토록 위험한데도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요동벌판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강물이 절대 성난 소리로 울지 않아.”

하지만 이것은 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요하遼河는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밤에 건너지 않았을 뿐이다. 낮에는 강물을 볼 수 있으니까 위험을 직접 보며 벌벌 떠느라 그 눈이 근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찌 귀에 들리는 게 있겠는가. 지금 나는 한밤중에 강을 건너느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것에만 쏠리고, 그 바람에 귀는 두려워 떨며 근심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冥心(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에 누(피해나 괴로움)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 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 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누었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옛날 우임금님이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에 짊어져서 몹시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뚜렷해지자 용이든 지렁이든 눈앞의 크고 작은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마음에 접촉되는 객관적 세계의 모든 대상)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도록 한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강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이 됨에 있어서랴. 이에, 내가 사는 산 속으로 돌아가 문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금 곱씹어 볼 작정이다. 이로써 몸가짐에 재빠르고 자신의 총명함을 믿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바이다.
) 열하일기막북행정록 癸丑日(87)